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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Nov 06. 2019

넌 처음부터 경력자였니?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당연히 못하지.

나이가 들고 나니 내가 그동안 해 왔던 일이 많이 벅찼다. 차량 운행을 하며 허리가 삐끗해서 침을 맞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과연 내가 앞으로 이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즈음 내 마음을 아는지 날씨도 연달아 태풍이 몰아쳤다. 태풍으로 외출을 하지 말라던 그 날. 원장으로부터 어린이집에 나와서 물청소를 하라는 단톡이 왔다. 비바람이 내리치던 날 나는 호스를 들고 어린이집 창문을 닦았다. 휘몰아치는 바람만큼 내 마음도 요동쳤고, 퇴직금을 포기한 채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아이들과 뛰어놀고 뒹구는 건 너무나 신났다.  지금도 아이들이 보고 싶다.

내 정신연령은 딱 4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만 2세 담임을 연달아 9년을 했다.)

평일 대낮에 커피숍에 앉아 커피 마시며 글 쓰는 게 너무나 부러웠던 나는 딱 하루 실업자로 그 호사를 누리고 신입이 되었다.


신입의 일과는 출근하자마자 빗자루로 사무실과 고객쉼터를 쓸고 닦는  일을 한다. 그리고 자판기의 커피와 종이컵을 채우고 8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고객맞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고객들보다 옆자리에 앉은 경력자 팀장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내게 날아온다.

20년 가까운 경력자가 볼 때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울지 나는 안다. 지금 하는 일에 전문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고객들이 전화로 하는 말도 옆에서 하는 말도 못 알아듣겠고, 전산 입력하는 것도 익숙지 않아 늘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처럼 상기되어 있다.

점심에 10분 정도 쫓기듯 밥을 먹고 나면 다시 일상이다.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쌓여있는 서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를 본다.

차라리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밤새워서라도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눈치 봐가며 묻고 혼나다 보면 출근한 지 12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오늘도 나머지 공부다.

자율학습도 알아야 하지 팀장은 오늘도 야자 감독관이 되어 머리 희끗한 나를 두고 고군분투한다.

토, 일 이틀 연휴는 두번 주어진다.


학교에 다녀와 배가 고파 라면을 먹은 아이는 졸린 눈으로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씻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든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 보다 한 시간 먼저 시작된다. 5시 반에 일어나 가마솥에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를 만든다. 미숫가루를 타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는 아이와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다.


난 엄마니까 뭐라도 해야 한다.

싱글맘이니 피박에 독박이다.


아침을 마주 앉아 먹고는 가방을 들고 뛰쳐나간다.

또다시 일상이다.


내가 유치원 1년 차 교사를 맞이했을 때 어땠을까? 자주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실습하는 선생님이 화장실 청소를 하려고 하면 이런 건 내가 하는 거라며 양말을 벗고 바지를 둥둥 걷고 청소를 했다. 내가 이런 것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까 봐 경력자인 내가 하는 배려였다. (내가 1년차였을 때 주임교사가 보여준 모습을   따라한거다.)교수님이 밀대 쓰지 말고 손 걸레질하라고 했다는 말에 나는 교수님이 아니니까  밀대로 해도 된다며 선생님의 손을 잡아 올렸다. 어렵고 힘든 건 내가 했고 만들기를 할 때도 옆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었다.

올 해 여름방학 때 당직하며 만든 인형

머리에 새치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요즈음 똥오줌 못 가리고 매일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학생 때 혼나지 않았던 몫까지 열심히 혼난다.

때마침 울리는 팀장의 휴대폰 알 소리.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는 그 음을 흥얼거리고야 말았다!!

"지금 노래할 때예요?"

아놔! 그럼 이 나이에 너한테 혼난다고 우냐?

내 자존감은? 그래도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니 다행이다. 글쓰기를 해서 얻은 큰 수확이다.

독서 토론하는 날 마감을 하지 못해 참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못 갈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토론 모임에서도 빠져나왔다. 이번은 내가 선택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는데 정말 아쉽다.


밤 9시쯤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누우면 아침이다.

차근차근 일을 알려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텐데, 옆자리 팀장도 바쁘다 보니 어쩔 수없이 큰소리로 나무라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팀장의 말투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 내가 이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런 고비를 넘겨야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나  비참한 생각이 들고,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조차 막을 길이 없는 요즘이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렇게 외친다.


넌 처음부터 경력자였니?


퇴근길에 아이를 만나 김밥 재료와 초밥 재료를 사 왔다.

주말에  엄마와 소풍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엄마지만 소풍 가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 어릴 적 엄마가 싸준 도시락처럼 바나나에 병사이다 한병도 넣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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