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by 솔담

아파트 높은 곳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며 집으로 하나둘씩 들어오는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차가 막히고 춥고 더워도 모두들 퇴근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죠.

집이란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곳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삑삑삑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며 "아들! 엄마 왔어"하고 인사를 하는데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하던 평상시와 달리 "엄마! 나 컴퓨터 바꿔줘"라고 합니다. 게임하는 손은 멈추지 않고 옆으로 눈길만 흘깃 주는 아들.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뒤 "저녁 뭐하고 먹을까?"라고 물었더니 "나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 안 고파"라고 합니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구워놓은 고등어가 조금 남아있고 콩나물국이 담긴 냄비의 뚜껑도 열려있습니다.


고등어는 금세 구워 먹어야 맛이 있는데, 대접에 고등어를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은 듯합니다.

아침에 입맛이 없다며 밥 안 먹는다는 이야기만 듣고 출근을 했기에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아침에 안 먹은 고등어랑 콩나물국이랑 먹었어"라고 답하는 아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라면을 먹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데우고 콩나물국을 데웠습니다.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는데 아들이 나오더니

"엄마! 나 자전거는 안 사도 될 거 같아. 이제 1년 남았는데, 버스 타고 다니지 뭐."

"그래. 잘 생각해보고 또 말해줘." 하니 방으로 들어갔던 아이가 잠시 후 다시 나오며,

"컴퓨터 바꾸자. 자꾸 블루스크린이 뜨고 게임하다가 멈춰!"

"얼마 전 게임 새로 깔아서 바이러스 따라 들어온 거 아냐?"

"게임 까는데 바이러스가 왜 들어와. 컴퓨터가 문제지."

짜증이 잔뜩 들어간 말투에 저도

"엄마, 밥 편하게 먹고 싶은데, 다 먹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하고 제 마음을 말했습니다.

"알았어." 하고 들어가는 아들.

배가 고팠지만 밥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이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저는 가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엄마가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하고 휴전을 외칩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면 아이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화가 난 제 마음도 어느 정도 누를 수 있기 때문이죠.

어른이라고 화가 난다고 무작정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강요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방으로 가서 "이제 다시 이야기해볼까?" 하니

"포맷도 다시 해서 공간도 많아. 그런데 친구들이랑 게임하다가 자꾸 멈추니까 화가 나!"

"이번에 새로 시작한 게임이 그런 거야?"

"응. 삼촌이 자전거 사준다고 했잖아. 그걸로 컴퓨터 바꾸면 안 돼?"하고 묻습니다.

"생각해보자. 게임하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해."


아이의 목소리도 저의 목소리도 한결 낮아 있습니다.

잠시 휴전을 외치지 않았더라면 같은 결론이 나더라도 서로의 기분이 상해 있을 텐데 이 정도에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을 하는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어둠 속에서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있을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거실의 불을 켜놓고 학교에 갑니다. 1층이라 일찍 어두워지는데 집이 어두우면 무섭다고 합니다.

아이가 수련회 가서 집에 없는 날 퇴근하고 빈집에 들어오는 제 마음이 딱 그랬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이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이는 빈집에 들어오는 것을 7년째 하고 있습니다.

P시로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알려준 게 가스 불 켜고 라면 끓이는 방법입니다.


시골에 살 때는 학교 끝나면 제가 일하는 어린이집에 가방을 놓고 밖에 나가 놀다가 함께 집으로 갔기 때문에 저와 함께 어둠을 맞이했지만 도시로 이사 오면서 아이 혼자 어둠과 마주했습니다.

며칠 전 저녁에 "엄마! 나는 여기 집이 적응이 안됐어. 너무 좁아서.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아이.


저는 이사할 때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할지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학교 가까운 곳에 아이가 걸아 다닐 수 있는 집이 우선이었습니다. 집 크기는 돈에 맞추면 되고 아이가 뛰어도 되는 1층이 기준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내가 살던 시골집을 다시 사고 싶다'라고 말을 하는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살던 곳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와 천문대를 다녀오던 날 밤에 가보았습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계곡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올려다보았습니다. 대문의 위치가 바뀌었고 야생화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제 집이 아닌데도 서운했습니다.


집이란 그런 건가 봅니다.

다시 돌아오게 하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나만의 것은 아니지만 살았던 곳이라도 가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곳 같습니다.


아이와 둘이 살지만 아이가 집에 돌아와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아이의 말에 더 귀 기울여주고 아이의 마음을 더 알아주는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조용히 엄마 마음을 전하고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쓰며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아이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그런 아이가 될 거라 믿습니다.


어제 읽은 김정운 교수님의 책에서 나오듯

집이 온전히 아이의 '슈필라움'이 되도록 해주어야 겠습니다.


슈필라움:'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으로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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