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그 사람의 아픔까지 사랑할 수 없는 나.

by 솔담

전화기 화면에 그 사람의 이름이 번뜩였다. 무음이지만 그 사람의 이름만으로 볼륨이 최대치다.


받아?

말아?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뱉은 그 사람의 한마디!

“언니! 울어요? 미안해요.”

삼겹살 데이라 겹살이 굽고 있는데, 웬 오버?라는 말만 맴돌고 몸은 방으로 향하고 문을 닫았다. 애써 다독였던 마음이 무너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생각해보니 언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됐는데, 나 좀 이해해 달란다.

묻고 더블로가? 어머 너 타짜니?

지금 이판사판 공사판을 만드시겠다?

여보세요! 온수리 오춘기라고 들어봤어?



험담을 열심히 즐기던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랍비는 조용히 깃털 베개를 그 사람에게 주며 언덕에 올라가서 깃털을 모두 날리고 오란다.

엄훠~ 일케 쉽게 끝?

꾸중을 들을뻔한 그 사람은 힘껏 깃털을 날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랍비에게 돌아왔다.

훨훨 날아간 깃털을 다시 주워오라고 말하는 랍비.



이렇듯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 수 있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몽골 속담처럼 무심코 내뱉은 말로 인해 익숙하던 관계가 허물어지고 애써 해 놓은 기초공사마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직장상사가 한둘이겠냐마는 견딜 만큼 견디다 안되면 그 사람을 안 보는 수밖에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나이 오십이 되어 써주는 곳이 없을지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왜 사람들은 지위적 관계가 심리적 관계를 넘어선다고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갑의 위치에 서서 늘 내려다보는 그 사람의 말속에는 아픔이 담겨있다. 얼굴까지 뻘게지며 쏟아내는 말투는 종이를 베어버릴 듯하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내 마음이 그랬다.


대나무 숲을 향해 외치던 한마디!

5G를 선도하는 우리나라에서 “난 팀장님이 참 힘들어요.” 그 말은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쓔~~웅!!하고 날아가 그 사람에게 닿아버렸다.


“내가 변해볼게요. 언니가 우스개 소리를 해도 내가 못 알아듣잖아요. 언니가 흥얼대는 노래 나는 하나도 몰라요. 나도 참 삭막하게 살고 있다는 거 알아요. 언니 옆에서 언니한테 좋은 영향받고 싶어요. 내가 변하도록 노력할게요.”


“상대방은 변하지 않아요. 내가 변해야죠. 내가 그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나는 하루하루 즐겁게 잘 지내고 싶은데, 내 몸이 반응을 해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어깨가 아프고 머리부터 온몸에 침을 맞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내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지만 몸이 아프다면 그곳은 이미 일터의 기능을 잃어버린 거니까요. 서로 노력해 보아요. ‘우리’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공중 화장실에 가면 어김없이 붙어있는 문구가 생각난다.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

늘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좋은 향기가 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지하철을 타면 난다는 그 냄새를 지닌 사람이지만,

나는~

내가 오르지 못하는 나무를 오르려 애쓰지도 나무가 잘 자라라고 희생하는 거름이 되지도 못하는 어중된 사람이다.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묻고 알아가면 된다. 물어보는 사람을 탓하는 투로 말하는 아는 자의 오만함에 묻는 것이 두려워지는 내가 문제다.


쓰다보니 내가 옳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깔아놓은 이판에서 한판승을 거뒀다.
심판 전원 내게 손을 들어줬다.
워매 존거.
판 좀 키워볼까?ㅋ


오늘 아침 출근길 신호대기 중 무심코 나무 꼭대기에 눈길이 머물렀는데, 움츠려 드는 기온이지만 나뭇가지로 만든 새집에서는 아기새와 어미새가 교류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그 집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고 성장해나가고 있는 새의 삶.

그들의 삶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에필로그*

그 계획이 무너졌다.

우울한 기분 그대로 들어감

나의 힘듦을 아이가 알까봐


차에 앉아 문자를 하고,

사비나 작가님의 전화를 받고

애써 다독인 그 시간들이.


닫혀진 방문을 벌컥 열어

침대 끝에 걸터 앉아 눈물을 뚝뚝 떨구는 엄마를 본 아이는 말없이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엄마! 밥 먹다 고기가 걸렸나? 자꾸 가슴이 답답해." 하며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는 아이.

나도 말없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잠든 나의 뇌리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자다 일어나 끼적이게한다.


엄마는 딱 4살이야.

그래서 아이들만큼 딱 그만큼의 마음을 갖아서 아이들하고 있음 좋았어.

아이들하고 눈높이가 맞았거든.

짱구 아빠처럼.......


어른들의 말에 상처받는

못난 엄마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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