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나만 기억하는 과거는 진실일까?

by 솔담

싱글맘이 되고 난 뒤

주말에는 무조건 밖에 데리고 나가야 하는 줄 알았다.

자전거와 씽씽카를 싣고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산으로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어느 수목원의 잔디밭에서 아빠와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더니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라고 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수목원 이름만 들어도 난 그 생각이 나서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산골에 살아서 산 하나만 넘으면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돗자리를 펴놓고 아이스박스를 내려놓으면 그때부터는 내 시간.

아빠와 함께 온 가족들 틈에 껴서 보트도 얻어 타고 그 아저씨의 손을 잡고 거닐기도 하는 친화력 좋은 아들을 지켜보며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갈 수 없는 주말이면 집으로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 삐삐네 집으로 만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웃었다. 아들이 슬퍼하지 않으니까.



혼자서는 무서워 잠을 못 자던 아들이 중학교 2학년쯤 되니 정말 혼자서 잘잔다.

어제는 "엄마! 나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주말에 여행도 가고 할머니네도 다녀와!"라고 한다.

혼자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서운했다. 갈곳이 없는데 가라고 하니.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네 애인(막내아들) 잘 있어?"라고 물었더니

"이제 여자 친구 생기니까 나는 뒷전이야."라고 한다.

그 말을 아들에게 했더니

"엄마! 내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고 할 때 많이 즐겨. 얼마 안 남았어"라고 한다.

수시로 엄마를 안고 사랑한다고 하고 엄마 침대에 들어와 같이 자자고 해서 밀쳐내도 밀리지 않는 사춘기 아들로 자라 버린 아이.


아들에게 물었다.

"산골 살 때 엄마 친구들 가족하고 캠핑 다녀오거나 놀다 오는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그렇게 울었어? 다른 집은 4명, 3명에 아빠까지 있는데, 왜 우리는 둘 뿐이냐고 울었었잖아."

"엄마? 내가 그랬나? 난 기억에 없네."


남동생에게

"월간지에 누나 글이 딱딱하게 실려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 우리 그때 참 고생 많이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누나! 난 기억이 잘 안 나네?"

이런......

나는 30년 넘게 마음에 담아두고 아파하고 잘 지내주는 동생이 고마웠는데

같이 겪은 동생은 기억에 없다니 다행인 건지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지 알쏭달쏭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하게 지워져도 되건만 왜 내게는 어제 일같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지......

내게만 아프고 내게만 기억되는것이 이것뿐일까?

더 불행해 질까 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놓고 있다가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 뒤 나는 행복해졌을까?


내 책에도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나는 나의 불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건 사실인 것 같다.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나를 언제 만나게 될까?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할 상대가 많지 않은 나.

지나다가 인사하는 이웃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뿐이고,

친구들도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카톡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는 얼굴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밥 한번 먹자' "약속 한번 잡아봐' 하는 대화는 지금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려서 "그래..."로 짧게 끝나 버린다.

"환갑 지나면 우리도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때 함께 여행하고 그때 만나 열심히 수다 떨자"라고 하는 친구는 정말 많이 바쁜 것 같다.


잘못 맞춰진 나사 하나 때문에 이렇게 삐걱거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고쳐줄 수 없는 고장 난 나를 고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나왔던 김필의 [그때 그 아인] 노래를 고3때 짝꿍에게 보내줬더니 이런 답이 왔다.


그때 그 아인 아줌마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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