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7
얘~ 내 짝꿍 같은데......
내가 일하는 곳은 점심시간에도 찾아오는 고객이 있기 때문에 여직원 두 명은 교대로 점심을 먹는다.
서류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내 짝꿍 같은데....."
고개를 들어보니 프라다 글씨가 크게 쓰인 검은 가방이 보였고 더 올려다보니 잘 꾸민 여자가 서있었다.
얼른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머, 은*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너 맞지? 연*. 자기야! 얘가 고3 때 내 짝꿍이야."
짝꿍은 돈을 내고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남편의 팔짱을 끼고 사라졌다.
점심을 먹고 내려온 옆자리 팀장에게 짝꿍이 왔다 갔다고 이야기를 했다.
"난 프라닭도 잘 못 시켜 먹는데, 걔는 프라다 가방만 보이더라면서......"
그 말이 웃겼는지 팀장은 큰소리로 웃었다.
삼 년 전 졸업 후 처음으로 짝꿍에게 연락이 왔다.
"반갑다.... 연*야. 보고 싶다. 너 체육대회에 갈 거야?"
"응, 이번에는 가려고."
"너 집이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아냐! 집 앞에 바로 버스 있어."
"내가 출발하면서 전화할게. 우리가 5분 거리에 살았구나?"
그렇게 만난 짝꿍은 그대로였다.
30년이 지났는데 그대로라고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지만 우리는 대번 알아봤다.
아들은 Y대 음대 다니고 딸은 곧 결혼을 할 것 같단다.
그래서 종로에 가서 다이아를 미리 샀고, 골프장에서 동창 누구누구를 자주 만난다고 한다.
나는
“너 ‘목관오중주’라는 시 기억나니? 호른, 바순 뭐 이런 악기가 나오는 거였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안 나오더라. 고3 때 네가 알려줬는데.”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팝송을 발음 나는 대로 적어서 우리 같이 불렀잖아. 위아 더 월드, 핸인핸드...."
짝꿍은 그랬었나? 하는 표정을 또다시 지었다.
짝꿍이 몇 등을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했다.
그때의 성적이 지금의 경제적인 부를 얻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짝꿍의 남편은 내가 일하는 곳의 거래처 사장님이다. 카톡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결제대금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을 지금까지는 팀장이 대신해왔다. 이제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것을 알았으니 그 일을 내가 한다.
결제대금 사진만 보내기 그래서 가끔 노래도 보내고 좋은 글도 보낸다. 그러다 친구의 카스에 들어가 보니 짝꿍은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프랑스 자수를 놓고, 에코백도 만들어 나누어 준다.
짝꿍 말대로 그때 그 아인 아줌마가 되었지만
너와 나는 다른 아줌마의 세계에서 사는 거 같다.
난 누가 볼까 봐 카스는 차단해 놓았고, 블로그는 타고 오는 학부모님 때문에 브런치로 옮겨 필명으로 비밀스러운 고백을 털어놓으니까 말이다.
난 언제부터 비밀스러운 아줌마가 되었을까?
난 이 시점에 내세울 게 없어서
자꾸 과거 이야기만 하는 걸까?
세월이 흘러 2020년을 추억하면
또 지워버리고 싶은 일만 떠오를까?
짝꿍은 현재 이야기를
난 30년 전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