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중주
딸과 엄마라는 두 개의 이름 사이에서
빗소리에 눈을 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공기, 젖은 땅, 1층에서 올려다본 잎이 무겁게 내려앉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미소를 지을 만큼 좋다.
이유 없이 좋은 비가 걱정을 한 아름 안겨줄 때가 있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 돌아올 아이 생각에......
8살 아이의 작은 손으로 펴고 접는 연습을 하다 들어간 3단 우산은 세상을 다 담고 있었다. 작은 우산 하나에 마음이 놓이다니 나는 참 단순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캠프를 간 아이가 없는 집에 들어가니 참 쓸쓸했다. 늘 엄마보다 먼저 와서 텅 빈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너는 매일 이 기분이었겠구나? 주저앉아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네가 불을 켜놓고 학교를 가는구나. 불 켜놓고 가면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나무랐던 엄마는 이제야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참 모자란 엄마라는 생각에 그냥 눈물이 났다.
작은 스마트폰은 늘 아이의 손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혹시라도 시력이 나빠질까 봐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사주고 어두운 곳에서 보는 것 같으면 "눈 나빠져!"라고 외치며 불을 켜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잠들기 전에 휴대폰을 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 화장실을 가려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아무 말하지 않고 불을 켜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아이에게 "아들! 불 꺼줘. 엄마 진짜 잘 거야."
그제야 아이는 "진짜 잘 거지? 깜깜한 데서 보면 눈 나빠져" 천천히 날아오는 펀치에 한방 맞았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 마음에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대학 입학금 까지만 엄마가 해줄 수 있어. 그 뒤로는 독립해서 네가 살아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나. "엄마! 나 혼자 살다가 군대 가면 그릇이랑 그런 건 어떻게 해야 돼"
"김치찌개 끓일 때 어떻게 하는지 보여줘. 그래야 나 혼자 살 때 해 먹지." 아이는 가끔 그렇게 묻는다.
그날을 나는 준비를 해온 걸까?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게 두렵지만 내가 잘 지내야 아이도 편안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테니까.....
너는 온전히 네 삶을 살 수 있도록 엄마도 정말 잘 살게.
네가 있어서 엄마가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다는 걸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내 자식 키울 걱정이 우선이었다. 이혼한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아등바등 울며불며 지내다 잠이든 딸의 머리맡에서 흘릴 엄마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까?
미래의 계획에 엄마는 없었다.
나의 이기심이 이제야 보인다. 쉰이 되고 십 년이 되어 익숙함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지금에서야......
내 걱정만 했다. 나는 그렇게 염치없는 딸로 엄마를 원망하며 힘을 키워나갔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엄마처럼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살기 싫었다.
지우려 하면 지워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을 대하는 나는 엄마였다.
내 기분에 맞지 않으면 말을 안 했고, 관심을 받고 싶으면 아픈 척 쓰러졌고, 일찍 들어오지 않는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믿음.
그거 하나만 닮았어야 했는데,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다.
모든 것을 잃고 '엄마'를 지워버리려 하던 삶을 살던 그 시간을 마주하고 나니 '엄마'가 보였다.
생각을 잃고 건강을 잃은 엄마는 그 옛날처럼 양팔 벌려 나를 맞이한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