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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덕대게 Mar 24. 2024

영화를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

<가위손> - 팀 버튼

한참 진로 고민이 많을 나이,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던 나는 장래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짙은 우울감, 어두컴컴한 미래, 점차 커져만 가는 불안증. 그러던 어느 날 한 영화가 나의 삶에 틈입했다.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가 있다면 이 작품이 아닐까.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은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영화의 길로 인도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길을 걷고 있고, 앞으로도 쭉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물론 아무런 배경 없이 <가위손>이라는 작품 하나만으로 충동적인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나는 옛날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다. 반항적이고 고집이 센 나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과목들을 하나같이 싫어했다. 주말마다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수많은 예술 경험 - 이를테면 음악회, 영화관, 사진전, 미술관 등 - 을 즐겼던 나는 예술의 풍부한 자율성에 자연스레 매력을 느꼈다. 나는 모든 예술 분야가 좋았다. 회화부터 음악까지. 전부 다 마음에 들었고, 내 취향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분야를 전부 다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의 애매한 재능은 어느 한 예술 분야에 집중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져있어 고민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나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영화이다. 당시 나에게 영화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완벽한 선택지였다. 영화 예술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회화의 비주얼적 시각성, 무용의 역동성, 음악의 청각성을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바로 이 사실을, 나는 <가위손>이라는 영화를 보며 깨닫게 된다. 영화를 공부하며 수많은 영화를 보았으나 <가위손>의 특정 장면을 본 기억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그 찰나의 씬 하나가 삶의 행로를 바꾸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장면은 '아이스댄스'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극의 내러티브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여주인공 '킴'이 마당에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고 밖으로 나가자 에드워드가 얼음 조각상을 조각하고 있다는 내용의 씬이다. 킴은 에드워드가 조각하는 얼음의 눈 내리는 잔해 아래에서 춤을 추고, 유려한 카메라는 그러한 킴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화룡점정으로, 배경음악에는 대니 엘프먼의 사운드 트랙이 흘러나온다. 팀 버튼이라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투영된 에드워드라는 캐릭터가 조각하는 얼음 조각상 아래에서 내리는 눈의 잔해, 이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담아내는 팀 버튼만의 판타지적 연출. 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현실 - 도피감은 삼박자를 이루며 내 살갗을 파고들었고, 그렇게 나는 그 순간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아, 나는 평생 이걸 하게 되겠구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창작자와 수용자, 즉 작품과 '나' 사이의 공명을 의미한다. 마치 <가위손>의 에드워드 캐릭터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관객들과 상호작용하는 팀 버튼의 모습처럼, 영화란 쌍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매체이다. 영화란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매체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매체인가. 나는 점차 영화 예술이라는 분야의 매력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혼자서 이 지독하게도 우아한 예술에 대한 사유를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생각이다.




영화는 여타의 예술 분야들과는 그 성격이 다소 다르다. 대부분의 예술은 인간의 오감 중 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공략한다. 이를테면 음악은 청각에, 회화는 시각에 자극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만큼수많은 감정을 함축하여 제시하는 예술 분야이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는 모든 예술의 특징을 품고 있다. 음악의 청각성과 회화의 시각성, 무용의 역동성과 사진의 시간-봉인적 속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연극적 특징.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다시 보면, 평균 3~5초 정도로 여겨지는 하나의 컷즉 화면이 다음 영상으로 바뀌기 이전의 프레임들의 집합은 그 자체로 엄청난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왜냐하면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시각적, 청각적, 영상적 모티프가 무한하게 담겨있으며, 말하자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담긴 연출자의 시선을 담아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컷으로만 이루어진 매체가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촬영과 편집의 결과물이다. 즉, 영화가 완성되는 최종점은 편집이다. 그렇다면 편집에서 비롯된 연속성의 자극, 다시 말해 컷에서 다음 컷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예술적 의미 또한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쇼트들의 집합이 모여 씬이 되고, 씬이 모여 시퀀스가 된다. 할리우드 영화를 기준으로, 보통 한 영화에 포함되는 컷 수는 1500컷에서 2000컷을 넘나 든다. 만약 액션 영화나 스릴러처럼 쇼트의 변화가 잦아야만 하는 영화라면 3000컷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라는 매체 안에는 얼마나 거대한 미학적 자극이 집약되어 있는 것인가? 그 짧은 3초의 컷 하나, 그 컷에서 다른 컷으로 넘어가는 텀에서의 편집적 자극도 무시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적어도 1500번 이상 반복하다니. 영화는 그런 매체이다. 평균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24 프레임, 다시 말해 1초에 24번씩 죽었다가 깨어나는 사진들의 반복이 평균 3~5회 반복되고, 또 그 과정이 최소 1500회 이상 되풀이되는. 거기에다 사운드라는 요소까지 더한다면, 더 이상 예술로서의 영화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현시점 모든 예술 중에 그 집약도와 함축성이 가장 강한 매체이며의미상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다적어도 지금부터는 이러한 영화의 근본적 성질을 인지한 상태로 작품을 대해야 한다




나는 영화라는 종교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나의 숭배는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와의 삶이 돈이 되기란 분명히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내가 경제적 결핍에 시달려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강제로 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 공사 현장 같은 곳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날 저녁 나는 영화를 재생할 것이고, 내 삶에서 영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치고 힘들 때면 내 머릿속에 <가위손>의 아이스댄스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영화는 내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자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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