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증명과 수호
도서관에 가면 저는 가장 먼저 철학 코너로 가는데요.
어느 날, 쉽게 쓰인 철학책을 고르려고 두리번거리다가 이런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
제목 한 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제목을 지었네.’ 하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오래,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 노력하며 살아왔을까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존이 부서지고 작아졌을까요?
성적, 연봉, 재산, 직업, 외모, 집안.
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우러르는 가치를 획득할 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자존은 서서히 닳아 작아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경험하곤 합니다.
누가 더 쓸모있는지를 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심지어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조차도, 마치 내 인생을 산 것 같지 않은 공허와 허무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돌이켜보니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 세상이 원하는 가치만을 좇아왔기 때문이지요.
가치란 무엇일까요.
가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모두가 중요하고 보편적인 가치라고 말하는 '사랑'조차도,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중요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감정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성과의 사랑이 가장 애틋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동물과의 사랑이 가장 애틋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 처절히 노력하는 순간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죽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겨우 삶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가치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가치를 좇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불행의 씨앗은 나의 사적인 가치가 세상의 보편적 가치에 짓눌릴 때 자라납니다.
그래서 저는 잘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할수록, 반드시 '나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세계'를 가진다는 건, '세상이 바라보는 나'가 아니라 나를 기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도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 기준을 가지는 것인데요.
그 판단 기준은 사회가 말하는 가치가 아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최대한 나열해보고, 가치의 우선 순위를 정해보세요.
그리고 우선 순위를 판단 기준으로 크고 작은 인생의 선택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세상에 끌려가지 않는 고유한 나의 세계가 구축되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거창하거나 극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는 혼자 자유롭게 일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여럿이 함께 어우러져 일할 때 잘 맞는 사람인지 아는 것.
화려한 부자들처럼 살 때 행복한지, 소박하지만 소소하게 살 때 행복한지 아는 것.
자연과 어우러지는 여유가 좋은지, 시끌벅적한 도시의 삶이 좋은지 아는 것.
이렇게 내가 선호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켜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만약 지금 힘이 든다면, 나와 세상의 가치가 상충되는 지점이 근본적인 원인인 동시에 해결의 실마리일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은 해결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개선해나갈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세계'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쓸모를 누군가에게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수호’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내던져 상품처럼 측정받는 일입니다. 물론 현실을 살아가려면 그런 순간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주도적인 선택이 아니라면, 사회의 요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반면, 나의 세계가 있는 이들은 사회의 요구들 중에서도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포기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절실하게 뛰어듭니다. 매사 주도적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나답게 사는 삶이 주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유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갈 때 진정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만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 세계 속에서 사는 용기에서 나온다."
여러분은 '나의 세계'를 가지고 계신가요?
사유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