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왼쪽 다리는 접히지 않아 쭉 뻗은 채, 오른쪽 다리 하나에 온 힘을 실어 일어서려던 순간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바닥을 짚고 일어나서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홀로 또다시 찾아온 고통과 맞서고 있었으리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근거리 식탁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통째로 덮어버린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시선을 움직여도 시야에 걸리는 아담한 집안에서,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아빠가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목소리도 이제 안 나올 거야.”
코에 호흡기를 낀 채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을 때에도 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나인 것처럼. 1년 3개월, 투병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꺼냈을 그 한마디. 늘 과묵하게 다물었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지독하리만큼 나약한 그 한마디는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의 물꼬였을 거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 두 달을 보내고 죽음의 기척이 본격적으로 드리우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매일 베란다 의자에 앉아 저 멀리 펼쳐진 산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았다. 이따금씩 정상에 오르곤 하던 그 산을 하염없이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그리 했을까. 두 손에 꼽을 만큼 많은 날들이 우리 곁에 있었음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묻지 못했다.
그렇게 매번 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두려움을 마주하지 못하고 내 눈만 질끈 감아버렸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내 눈에는 오직 나만 보였다. 아빠가 없는 나. 아빠 없이 살아갈 나.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 자신이 너무 가여워서 한참을 연민의 우물에서 허우적거렸다. 힘들 때마다 그를 핑계 삼아 억눌렀던 감정을 터뜨렸다. 그의 부재는 언제든 마음을 풀어놓고 울어도 되는 유일한 구실이었다. 전해지지 못할 어리광을 부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감정이 쌓여 임계점에 이르면 터지고 또 터지기를 반복하며 시간은 흘렀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 걸까. 언제부턴가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일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골집 일곱 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농사를 짓다가 가족들을 주렁주렁 달고 서울로 상경한 청년. 격주 교대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귀가하던 피로에 짓눌린 직장인. 지갑 속 2만 원이 일주일이 되도록 그대로였던 오직 회사와 집 밖에 모르던 가장.
자기 자신보다 온통 가족이 우선이었던 인생이 고작 죽음이라는 운명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비통함은 어땠을까. 평생 가족만을 지키다가 정작 자신은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참담함은 어땠을까.
아버지의 일생을 바라볼수록 또렷해지는 실체가 있었다. 그 한 번뿐인 인생을 갈아서 만든 존재. 바로 나였다. 나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나무를 밑동부터 갉아먹으며 자라난 가지였다.
나는 그런 나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심연으로 죄책감이 차올랐다.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그럴수록 나는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채찍질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내가 잘해야만 아버지의 고된 일생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미 지친 줄도 모른 채 강해지려고만 했다. 당신 자신에게 가장 박했던 아버지처럼 나도 나에게 한없이 박하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