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산타가 되어보자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그동안 고마웠던 모임의 사람들에게 그간의 고마움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작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학생 동아리에서 만난 우리는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꽤나 진한 우정을 이어왔다. 여러 번의 여행, 잦은 술자리 그리고 소수로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한데 모여 각자의 일을 하곤 했다. 2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만남을 이어왔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의 생일이나 졸업전시회, 취업과 같이 기념할 일이 생기면 다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줬다. 뿐만 아니라 훈련소에 있던 나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내줬을 만큼 누군가의 외로움과 고통에도 공감해주곤 했다.
아직 군 복무를 마치진 않았지만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에 힘이 돼준 그들을 위해 오래전부터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일을 이제 와서 실행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유독 누군가는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는 일에 치여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힘이 들 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또한 각자의 고민으로 인해 모임 내에서 말도 부쩍 적어지고 만남의 횟수도 줄어드는 것 같아 관계의 모멘텀이 필요해 보였다.
이렇게 올해 들어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이 연말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여유로운 군인인 내가 산타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나긴 고민 끝에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군대에 있는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단연 책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밋밋한 군 생활에 재미를 더해주며, 외롭고 힘든 나에게 위로를 전해준 건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선 벌써 200권가량을 읽었지만, 밖에 있는 동안에는 1년에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할 정도로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선 여유가 부족해지기 때문인지 당연하게도 책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선물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 친구들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유가 없어서 혹은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런 이유로 크게는 두 가지의 틀 안에서 책을 고르기로 했다.
①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책에 흥미를 갖게 할 수 있는 책을 고르자.
② 그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을 최대한 공감해줄 수 있는 책을 고르자.
모임의 인원이 13명이나 되다 보니 각각의 취향과 평소 책을 많이 읽던 사람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모두 모여있었다. 책을 아예 읽지 않던 시절과 많이 읽는 시기를 모두 겪어 본 나로서 모두에게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선물하는 건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책에 흥미가 생길 수 있도록 관심 있는 분야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책을 읽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면 그 속에는 평소에 하는 고민과 걱정에 대한 답이 있다는 사실과 최소한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느 정도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을 위로해줄 수 있는 혹은 등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난관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평소 친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내던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그들의 고민에 대해선 잘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알았을지 몰라도 속 깊은 고민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다 보니 괜스레 그 사람을 위한답시고 하는 나의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불쾌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진심은 통할 거야!'라는 생각에 서점에서 하루 종일 둘러보며 책을 골랐다.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그 사람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책을 골라놓고 '이미 읽어봤으면 어쩌지...'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소심하게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혹시 이 책 읽어봤어...?
내가 좋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항상 웃고 떠들며 행복하려고만 했다. 정작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짐을 나누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나의 고민도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였을까? 친구들을 위해 책을 고르는 시간은 길고 답답했지만 보람찼다.
한 명씩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사람과의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의 고민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전부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해보면서 조금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쳐 그리고 꽤나 거금을 들여(ㅎㅎ...)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책들을 결정했다.
책만 선물하는 데에 그친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책을 고르며 느낀 감정과 그동안의 전하고 싶었던 말을 짧은 편지에 담아 전달했다. 크리스마스 컨셉에 맞게 포장지도 크리스마스 패턴이 들어간 포장지로 골랐다. 마음과 정성을 담아 준비했다.
사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준 게 오랜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렇지만 이번에 누군가의 산타가 되며 느낀 건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한다는 건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나 누군가를 위해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배려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선물을 고르는 그 과정은 너무 행복했다. 선물을 고르는 동안, 편지를 쓰는 동안 그리고 포장을 하는 동안 나 자신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선물을 받는 그들이 고마워하고 감동받아할 때가 가장 짜릿했다. 그동안 작은 편지나 선물로 서로를 챙기곤 했는데 이번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도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엽서에 편지를 써주었다. 서로 꾸준히 챙기고 베푸는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린 받을 때보다 베풀 때 행복한가 보다.
(디자이너 친구의 크리스마스 엽서 디자인)
나는 가장 외로운 시기에 친구들에게 책을 통해 지식과 재미와 위로를 선물했다. 그동안 나는 힘들고 외로운 시기일수록 다른 이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했으나, 생각을 바꾸고 베풀기로 했을 때 비로소 나는 외로움에서 해방됨을 느꼈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부족할 때 비워낼수록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다니 말이다.
결국 책을 선물한다는 건 나의 생각, 마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동안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며 내 안에 가득 찼던 외로움을 친구들을 향한 생각과 마음과 감정으로 바꿔 책이라는 선물에 담았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다시금 행복해졌다.
정말이지 추운 겨울날 누군가의 산타가 되는 건 정말이지 푸근하고 행복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