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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Jun 23. 2021

프롤로그- 5평짜리 집

[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다들 집에서 혼자 뭐 해?


나는 정말 궁금했다. 대체로 나는 밖에서 사람을 만났고, 밖에서 밥을 먹고, 밖에서 돈을 벌었다. 집에서 혼자 하는 일이라곤 바깥 생활의 뒤치다꺼리와 과음으로 인한 숙취에 괴로워한 것뿐이었다. 아, 20대 초반에는 가끔 얼굴에 이상한 화장을 하기도 했다. 밖에 나갈 때는 절대 안 쓸 반짝이 자글자글한 붉은색 섀도를 바르고 눈썹까지 올 기세로 아이라인을 길게 그렸다. 조용한 게 싫어서 TV를 켜고 멍청한 화장을 지운 후 누워서 핸드폰을 봤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전한 집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고, 밖의 일상은 바쁘게 채워졌다. 어디든 나가서 집에 오는 패턴으로 혼자 산 지 8년이 됐다. 휴학 없이 꼬박꼬박 학교에 다녔고, 방학엔 아르바이트했다. 졸업하기 전에 취업해서 바깥으로 나돌 곳이 정해졌다. 집 - 회사 - 마트 - 집, 집 - 회사 - 술 - 다시 집. 일상의 파장은 점점 잔잔해져 크게 슬프지도 크게 기쁘지도 않은 날들이었다. 그렇게 3년 회사에 다니고 퇴사했다. 이제는 뭔가 대단한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코시국의 백수는 갈 곳을 잃어 정사각형 원룸에 표류했다.


 ‘아, 이제 진짜 뭐하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강제로 집에만 있으면서 나는 시험과 평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처음에는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면 나름 열심히 살았어!’ 힐링과 느긋함이 유행이니 나도 열심히 살지 말고 좀 쉬자-라고 3주 정도는 위안할 수 있었다. 열한 시쯤 눈을 떠서 알아봤자 하등 쓸모없는 정보를 보고, 봤던 웹툰을 또 보고, 남의 사생활을 구경하고, 다시 서핑. 그러다 누워있는 게 지겨우면 오후 네 시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깨어있는 시간은 많은데 이렇다 할 것이 없으니 잠들기 아쉬워 새벽까지도 깨어있었다. ‘코시국’은 귀찮음에 그럴듯한 설득력과 강제성을 더해줬다. 밖에 나갈 의지도 없지만, 기껏 생긴 의지는 전염병이 가로막았다. 시간은 계속 갔고 문득 지나간 시간에 이뤄낸 게 한 개도 없다고 자책하며 방구석에 앉아 침대를 노려봤다. 집은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무기력한 지를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집 얘기를 좀 해야겠다. 사실 집이라기엔 구색이 형편없어서 방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소개하자면 내 집의 이름은 ‘어차피 잠만 잘 집’이었다. 처음 구한 집은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 원인 3평짜리 원룸이었다. 화장실에서 현관까지 편도로 세 걸음이면 족했다. 어쩌다 친구가 놀러 오는 날이면 벽에 어깨의 절반을 접어서 붙이고 둘이 눕던가, 한 명이 바닥 모서리에 머리를 두고 냉장고를 피해 현관에 발을 두고 자는 집이었다. 침대에서 현관문이 너무 가까이 보였다. 그래서 자주 나갔다. 2년을 살고 월세가 5만 원 더 비싼 5평짜리 원룸으로 갔다. 이제는 침대에서 현관까지 다섯 걸음이나 걸렸다. 다시 2년 뒤 이제는 돈을 벌고 있다. 옵션으로 딸린 침대가 아닌 내 침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잠만 잘 집이라면 그것에 맞게 좋은 침대를 쓰고 싶었다. 더는 친구나 애인이 왔을 때 어깨를 구겨서 자고 싶지 않았다. 7평짜리 정사각형 원룸에 퀸사이즈 침대를 뒀다. 침대로 방이 꽉 채웠고, 침대에 푹신한 구스 이불과 종류별 기능성 베개를 올렸다. 덕분에 편안하게 누워만 있을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나를 자꾸만 누워 있게만 만드는 침대를 조금 원망하며 친구들과 다음에 우리가 빌릴 집을 얘기했다.


“냉장고 소리 안 들리는 집에서 살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는 냉장고를 머리맡이든 어디든 시야에 걸치는 곳에서 먹고 잤다. 약간 노란 끼가 도는 냉장고는 이사하는 원룸마다 옵션으로 있었다. 어디서 단체로 공구하는 듯한 비슷한 규격의 냉장고.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는 간헐적으로 윙윙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구질구질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쿨하게 차인 날, 3평짜리 방에서 윙윙거리는 냉장고를 보고 울었다. 냉장고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위이잉 돌아가는 냉장고가 제일 먼저 보여서 울었다. 친구는 얘기했다. ‘냉장고 소리 때문에 썩어가는 느낌이 들어. 괜히 마음마저 옹졸해지는 것 같아.’


“방문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봐. 오늘의 집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감성 원룸 러그 위에 빨래를 주렁주렁 널어봐. 저 집은 도대체 어디에 빨래를 널어 두는 거야? 또 나 빼고 건조기가 있는 거야? 나는 방문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현관문이 아니라 방문. 조금이라도 빨래가 밀리면 집 전체가 꿉꿉하고 눅눅해져. 그 상태로 빨래를 널면 마른 후에 옷에서 냄새가 날까 봐 수시로 맡아보며 선풍기 바람을 빨래 쪽으로 돌려. 이 축축함과 분리된 공간에서 살고 싶단 뜻이야. 현관문은 누구나 있는데, 방문은 누구나 있는 게 아니잖아.


“암막 커튼이 필요한 집에 살고 싶어”


암막 커튼을 안 쓰니까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된다고 얘기했다. 듣고 있던 친구는 반지하라 암막 커튼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시계를 봐야 시간을 알아. 나도 집에서 오늘 날씨를 알고 싶어. 암막커튼으로 가릴 만한 햇빛이 들어오는 집 말이야.


우리는 알고 있다. 당분간 또는 꽤 오랜 기간 냉장고가 시끄럽고 좁고 방문이 없는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원룸에서 살았고, 살아야 한다. 2030 주거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일에 온몸을 바쳐 투사할 의지도 기력도 나는 없다. 노력해서, 결혼해서, 코인이나 주식으로 돈 모아서 넓은 집으로 가라 - 따위의 말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다만 내 집에 ‘잠만 자는 집’ 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줘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5평짜리 집에서 실험적으로 사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너희의 사생활로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하며 물어봤다.


5평짜리 집에서 뭐 하고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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