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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Jun 30. 2021

할 일 리스트

[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카페에서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있다. 무려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 국내산 토마스 주스다. 가성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창문이 넓은 카페 창가에서 32분 만에 첫 문장을 썼다. 어렸을 땐 토마토 먹으면 피부 하얘진다고 해서 진짜 많이 먹었지. 요즘 자외선이 너무 심한데 선크림 다른 걸 사야 하나? 근데 왜 이렇게 샌들이 불편하지. 좀 늘려서 신어야겠다. 또 플라스틱 빨대를 써버렸구나. 거북이 코에 빨대 꽂힌 사진 봤는데. 카페 자주 올 거면 스테인리스 빨대를 하나 살까? 일자형도 있고 버블티용도 있구나. 버스에서 스테인리스 빨대로 음료 마시다가 급정거해서 목 다쳤다는 사람 있던데.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써야 되니까 상관없겠구나 - 의 흐름을 거쳐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 옆 공책에 오늘 꼭 글을 써야 한다고 적었다.



나는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하나에도 쉽게 집중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냔 말이지. 집중하려고 잔잔한 노래를 들으면 잔잔한 노래 가사를 찾아 내고야 만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안 하던 책상 정리부터 시작하는 부산스러움은 웃어넘기지 못할 만큼 예삿일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할 일 리스트’에 책상 정리부터 적어놨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적는 용도의 수첩은 고등학생 때 처음 받았다. 학원이나 인강 업체에서 수능 프로모션으로 나눠준 플래너는 수능 날까지 남은 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서 쓸 수 있도록 구성됐다. 덕분에 ‘휴식시간’까지 창조할 수 있었다. 모든 시간은 계획으로 쓸 수 있으니까 갑자기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가는 것도 ‘기분 환기’라는 계획인 척할 수 있었다. 여러 할 일을 적어두고 밑줄 좍좍 긋는 게 당시 얻는 가장 큰 보람이었다. 매 해 썼던 제각각 크기의 스케줄러는 기념으로 남겨뒀다. 내겐 정말 기념할 만한 일이었고, 다시는 없고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벤트는 한 번으로 끝나야 했다. 반복되는 순간 일상이지 기념일이 아니다. 그러나 애틋했던 내 마음과 달리 시험은 인생 어디에나 포진해 있었다.



오늘 할 일 수첩은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달라진 게 있다면 더 느슨해진 것과 안 해도 죄책감이 덜 하다는 것 정도였다. 수첩이 아니라 이면지 한 구석에라도 해야 할 것들을 눈에 보이게 적어 두고 좍좍 그었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인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섞인 채 사라졌다. 중요한 일정들을 어찌어찌 끝내기 위한 수단이자 발악이라 내가 계획적인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감 쪼개기가 아주 특효라고 한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기까지 일감으로 쪼갠다. 태생이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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