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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Jul 07. 2021

무색무취 인간의 고백

[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미친 사람이 부러웠다. 정확히는 질투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불광 불급- 미쳐야 미친다고 어른들이 자주 말했다. 무엇인가에 환장할 만큼 미쳐 있는 건 뭐고, 어느 경지에 미친 다는 건 또 뭐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아낌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들. 취향과 호가 분명해서 그 주제로는 얼마든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은 태평양 어딘가 잠수를 잘하는 소수민족처럼 나와는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익히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오이 싫어하네. 너무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좋더라 같은. 이런 것들은 키가 자라듯 나이와 경험에 의해 커간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개인을 구성하는 자아와 가치관 역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대학 가면’이라는 주문도 있었지 않았는가. 이 전제문은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쓰였다. 성인이 되고 마주한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은 그 어떤 강제성보다 낯설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가. 이 정도로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하지도 못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나는 누구인가’와 긴밀하게 연결됐다. 하나하나 대답할수록 내가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오이로 자아가 구성되면 편할 텐데.


의무적으로 썼던 취미와 특기란에는 무엇이 자리했나요.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주 말했다. 대중문화의 정점인 영화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 한 것 같다. 그래서 취미로 소개하기 흔하고 편했다. 영화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거슬릴 게 없는 대화다. 더 깊게 가보자.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막히기 시작한다. 기껏해야 영화제에서 예술영화 몇 번 본 걸로 젠체하는 게 전부다. 어쩌다 ‘영화광’을 만나면 ‘아 그건 안 봤어요’, ‘몰라요’만 멋쩍게 얘기한다. 영화광들은 영화감독을 얘기한다. 나는 영화만 기억하지 영화감독은 잘 모른다. 현실 세계에서도 외워야 할 사람 이름이 많은데 저 쪽 세계의 배우와 감독까지 어떻게 다 기억하냔 말이지. 게다가 날이 갈수록 집중력은 떨어져서 러닝타임 10분인 스펀지밥만 틀어 놓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지도 너무 많아졌다. 리모컨의 권력을 잡은 나는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볼 수 있다고? 아무것도 안 보는 게 쉽다구요. 


아- 그런 거 말고 특별히 잘하는 거 있냔 말이에요. 


특별할 것 까지 있나요. 사실은 다 그저 그래요. 그 와중에 ‘불호- 좋아하지 않는 것’들의 리스트는 늘어났다. 무례한 것, 양말 신고 침대 들어가는 것, 패키지여행, 아, 영화광을 만난 뒤로는 영화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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