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나는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친구에게 관대하다. 지은 죄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 사이에 잡힌 만남이면 더욱 관대해진다. 나가기 두 시간 전부터 은근히 각을 재기 시작한다. 이 친구도 귀찮아하지 않을까? 오늘 꼭 만나야 할까? 혹은 좀 더 늦게 만나도 되지 않을까? 이런 파장이 잘 맞는 친구인데 컨디션이 좋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시간 정도 늦게 만난다. 애초에 시간을 정할 때 두 시에 만나자고 하면 세 시에 보겠거니 한다.
“두 시 못표로 갈게.”
아, ‘못 이룰 목표’의 줄임말?
파장이 잘 맞는데 둘 중 하나가 피곤하거나 피치 못할 일이 있는 척한다면 약속을 다음으로 미룬다. 대부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지만 넘어간다. 네 맘, 나도 이해해. 반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친구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오늘 밖에 비 많이 오던데….”라고 은근한 밑밥을 보내면 “우산 챙겨 와! 나 일찍 출발했어”라고 화답한다. 빗속에서 친구를 기다리게 할 만큼의 염치는 없다. 행동이 빨라진다.
사력을 다해 나가기 싫다가도 막상 나가면 좋을 것이다. 근데 자주 까먹는다. 미래의 행복보단 지금 이 침대와 쾌적한 공기와 편안한 옷이 좋다. 특히 주말 오후 한 시 약속은 ‘나갈 준비 하자’고 마음먹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보통 11시에 일어난다. 9시나 10시쯤 눈을 뜨고 그대로 눈만 뜨고 있다.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밤사이 내가 놓친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확인한다. 웃긴 짤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이제 아무리 낙관적으로 계산해 봐도 씻고 나가야 할 때가 된다. 배도 고픈데. 한 시에 만나서 언제 밥을 먹는담. 차라리 집에서 뭐라도 간단히 먹고 여유 있게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 컨디션으로 누워있지 못할 것만 같다. 게으름으로 약속을 미루면 행복한가? 딱히 할 건 또 없다. 뒹굴뒹굴하다가 약속 시각 즈음에 정신을 차린다.
아, 나갈걸. 심심하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정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일곱 시. 그대로 바닥에 누워 옷가지와 함께 널브러져 있다가 집에서 남은 두부나 밥을 간단하게 먹는다. 아니면 집 앞 백반집에서 제육볶음을 먹거나 써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산다. 밥 먹고 잠깐 산책하거나 간단히 운동하고 돌아오면 여덟 시. 씻고 정리하면 아홉 시. 잠들기에는 너무 이르고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 시간대부터 잠들기 전까지 방 안에 붕 뜬 기분이 든다. 차라리 출근하고 싶단 생각도 든다. (생각하자마자 금방 소름이 돋는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 보다) 드라마나 영화도 한두 번이지, 고르는 게 더 힘들다.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 가만히 앉아 보고 있노라면 재밌는데도 지루하다. 끝나면 적막. 엔딩 크레디트의 까만 배경 같은 적막이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보게 됐다. 그래도 넷플릭스, 왓챠 플레이 구독은 매번 갱신한다.
누군가 불러 주면 좋겠다. 집 앞에 부르면 나올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걸 누가 쓰나 싶은 랜덤채팅이나 데이팅 앱이 왜 자꾸 생기는 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소개팅 앱 틴더는 아예 ‘동네 친구를 만나는 법’이라고 광고하던데, 참 노련하다. 분명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등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가십지에서 발행한 ‘솔직히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 유형 9가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솔직히 진짜 평범하지 않은가.
집에 있고 싶은데 집에 있기 싫은 이 어이없는 마음
이제는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된 것 같다. 나가고 싶은데 나가기 귀찮은, 약속 시각을 미루거나 뭉그적거리는 나에게 질려버린 ‘항상 나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나를 제법 잘 다룬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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