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J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J는 사람이 늘릴 수 있는 최대 크기로 백팩을 늘려 메고 다닌다. 대충 보면 무거워 보이는데 실제로 메면 진짜 무겁다. 비 예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산을, 혹시 모를 보조배터리와 아이패드, 화장대를 통째로 가져온 듯한 파우치까지. 군장 같은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J가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 어디 가는 건데..? 제발 알려주면 안 돼?”
이 상태의 J가 제일 재밌다. 보통 만나는 장소는 J가 미리 정한다. J에겐 ‘우연히’와 ‘번개’가 없다. 캘린더에 한 달 일정을 미리 짜서 일정에 맞게 만나고 나올 시간을 계산한다. 만나려면 J의 캘린더에서 빈 날을 찾아 장소와 시간까지 한 번에 정해야 한다. 어쩌다 늦게 퇴근한 J가 나중에 합류해 모임 장소를 모르면, J의 불안한 눈빛과 최대한 빠르게 가고 싶어 하는 애매한 손짓을 볼 수 있다. 한참을 놀리다 장소를 알려주면 이미 열어둔 지도 앱으로 목적지를 찍는다. 진짜 바로 앞인데. 다 왔는데.
J는 완벽한 J형 인간이다. 심지어 이름 이니셜에도 J가 있다. MBTI 유형을 개발한 사람이 J를 보고 J 유형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몇십억 인구를 16개의 성격 유형으로 거칠게 나누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J와 J 유형 해설을 비교해 보면 고개를 끄덕끄덕, MBTI는 과학이다. J는 계획을 사랑한다. 게으른 사람이 자질구레한 딴짓을 슬쩍 계획이랍시고 넣는 것과는 순도 자체가 다르다. 계획을 만들고, 계획을 지키고, 삶을 예측 가능함의 범주 안에 둔다.
J의 진가는 여행에서 나온다. J와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다. 나의 약속은 ‘그때 봐서’가 전부다. “몇 시에 볼까?” 봐서. “뭐 먹을까?” 그때 봐서. J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1박 2일 템플스테이 일정에 요즘 힙한 툴인 노션으로 계획서를 짜 왔다. 만나는 시간도 구체적으로, 버스 시간표까지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심지어 준비물 체크리스트에 가는 편과 가격을 정리한 사전 답사까지. J는 템플스테이에서 아이패드(J의 아이패드 이름은 베로니카다)로 108배 브이로그를 찍는 계획까지 세웠다. 템플스테이는 마음을 비우고 쉬러 가는 거 아닌가. 아무튼, J에게 템플스테이는 휴식이었다.
J와 만나는 건 기함을 토하면서도 편한 일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제일 최적의 시간대에 좋은 자리를 예약해 둔다. 나는 정산만 하고 털레털레 늦지 않게 가면 된다. 심지어 늦어도 관대하다. J는 나의 늦음도 계획에 있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날에도 베로니카를 가져와 다른 마감을 짓고 있었다. 군장 같은 J의 가방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물론 내가 늦지 않았다면 J의 가방은 조금 가벼워질 수 있겠지만, 난 늦었다. 꽤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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