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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Jul 23. 2021

내 삶의 빛, 나의 구원, 나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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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 5평이라는 실험적인 공간


우리는 술을 자주 마셨다. 학교 앞에 모여 살 때는 거의 매일 마셨다. 그중에 김가영은 자꾸만 집에서 혼자 머그잔에 소주를 따라 마셔서 심각하게 말렸다. 우리는 각각 3평 원룸, 복도 끝에 공용 주방이 있는 3평 원룸, 5평 오피스텔에 살았다. 원룸이니 고시텔이니 오피스텔이니 이름은 다르게 불리는데 사는 건 비슷했다. 새벽 1시쯤 되면 누구 하나가 자냐고 물어본다. 배고프지 않냐. 아침 수업이라고, 내 알 바 아니라고, 시시껄렁하게 얘기하다가 결국 새벽 2시에 순댓국집에서 모인다. 자정 넘어서 먹는 첫 끼는 아침 식사니까 소주도 한 병 시킨다. 아침은 많이 먹어도 죄책감이 덜 든다. 정 나갈 기력도 나올 사람도 없으면 수입 맥주 네 캔을 사 와 집에서 마셨다. 


술 먹는데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 동네는 밥보다 술 기억이 커서 밥집보다는 술집을 더 많이 안다. 자주 가는 술집 한쪽 벽 전체가 소주 뚜껑이 담긴 통으로 채워져 있었다. 단골들이 이름과 저마다의 패기를 붙여놓고, 열심히 병뚜껑을 채웠다. 우리는 병뚜껑 따위야 쿨하게 버렸다. 사실 모으면 뭘 주는지 몰랐다. 


졸업 후 각자 다른 동네로 흩어졌다. 서울에서 동네라는 말을 쓰는 게 자연스러운지는 모르겠다. 다른 지역에서 7평짜리 오피스텔, 동네 뒷산 전망대와 비슷한 고도에 있는 빨간 벽돌집 투룸, 5평 원룸에 살았다. 여전히 집이라고 하기엔 조금 머쓱한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방이다. 여전히 비슷하게 생긴 냉장고에 맥주 두 캔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름 돈 번다고 예전엔 없던 ‘감성’들이 방 곳곳에 보였다. 


캔버스 액자가 벽에 걸려있고, 화병이 생겼고, 책상과 의자도 ‘기본옵션템’의 그것이 아니었다.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분홍색 꽃무늬 극세사 이불은 흰색 구스 이불로 바뀌었다. 소주병 밑에 핸드폰을 깔고 플래시를 켠 ‘그린라이트’ 대신, 근사한 무드등과 캔들워머까지. 불을 끄면 은은한 주황빛이 돌아서 괜히 아련해진다. 감성이 터진다.


김가영은 외롭다고 자주 말했다. 누군가 외롭다고 하는 말과 표정은 오지랖을 부리기에 제격이라 만남을 주선하거나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 김가영의 말에는 별 영양가가 없다. 이런 셈이다. 서울시가 여성 1인 가구에 ‘안심 홈 세트’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봤다. 이중 잠금장치, 휴대용 긴급 벨 등을 설치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오지랖을 자주 부리는 사람이라 주변 친구들에게 신청해 보라고 기사를 공유했다. 김가영은 내 오지랖에 가장 먼저 반응해줬다.


 “잠금장치 신청하지 말까 봐. 그리워 사람”


기획 의도를 짤 때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예외의 경우가 있다. 김가영이 그렇다. 김가영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서울시 여성주거정책 담당 공무원에게 지면을 빌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또 이런 셈이다. 누구보다 뜨겁게 연애하고 헤어진 김가영은 구애인에게도 안부를 묻는다. “굿모닝 XX! 오늘도 여전히 잘생겼어?” (내가 잘생긴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냐는 답장을 받았다. 술자리에서 몇 년째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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