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른인데 자기감정을 왜 다스리지 못할까?

중3 아들과 42살 엄마의 일상

by 효댕

우리 울이는 내가 화내는 것을 징그럽게 싫어한다. 징그럽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 아이의 표정이 딱! 그러니까. 항상 사소한 일이다. 어느 날은 울이의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더 정확하게는 더러워서) 방을 청소하라고 말했다. 울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알겠다고 대답했고, 대답만 하고 하던 게임을 계속하면서 빈둥댔다.

몇 번은 참고 좋게 말한다. “울, 방 청소해” 하지만 그 아이는 계속 빈둥댄다. 그러다가 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거다. “이 XXX, 언제까지 좋게 말해, 하라고 할 때 하면 좀 좋아? 왜 꼭 이렇게 화를 내게 만들어~ 이 XXX는 할 일은 안 하고, 뭔 XX로 게임만 하고 있어,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내가 네 시녀야? 하녀야? 뭐야~ 엄마 하루 종일 일하는데 너도 집안일 좀 도우면 안 돼? 집안일은 그렇다 쳐도 네 방은 치워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폭발하고 나면 우리 울이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도 내가 치우고 싶을 때 치울 거야. 내가 맨날 더럽게 해 놓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 방인데 왜 엄마가 상관이야, 내가 내 할 일을 안 해? 나도 학교 갔다 오고, 학원 갔다 오고 힘들어. 엄마만 힘든 거 아니야.”


이 아이와 한바탕 하는 동안 내 감정은 점점 더 부풀어 올라서 나는 할 말, 안 할 말 모조리 뱉어낸다. ‘같이 살면서 공동체 의식이 없다, 의리가 없다, 본인 필요할 때만 엄마 찾고, 듣기 싫은 소리 하면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언제 엄마 도움으로, 보살핌으로 살았냐? 나는 나 혼자 컸다는 식으로 따박 따박 말대답이나 한다.’ 기타 등등 화가 풀릴 때까지 감정 섞인 말들을 쏟아낸다.


그럼 그 아이의 눈은 반쯤 감긴 실눈(사실 뱀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이 되어 나를 노려본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너무 감정적이야, 어른이 돼서 감정조절을 그렇게 못해서 어떡해? 아휴~ 엄마 감정이 진정되면 그때 다시 얘기해.”라며 꽤 어른스럽게 또는 무심하게 또는 더 열받게 말하고는 나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다.


‘넌 너무 감정적이야.’라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면서도,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말로 나에게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매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내 밑바닥을 보여준 후 가장 마지막에 듣는 말. 특히 울이에게 이 말을 들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이 북받쳐 오른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배신감 마저 들게 한다.


울이는 세 아이들 중에서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다. 예민하고, 사랑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게 크고, 속정이 깊고, 이기적이고, 자기 합리화가 대단히 잘되는 점이 나를 쏙 빼닮았다. 우리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요즘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너랑 똑같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 그래야 내 속을 알지.” 내가 우리 엄마 속을 뒤집어 놓을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나와 너무 닮아서 울이가 미웠다. 미워한 게 미안해서 애틋해졌다. 잠깐이지만 미워했던 내 마음을 울이에게 들킬까 봐, 더 조심히 그리고 세심히 울이를 살폈다. 울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갖고 싶은 것,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많아졌다. 나는 되도록 큰 이유를 달지 않고 그것들을 지원했다. 울이를 미워했던 그 시간을 만회라도 하려는 것처럼. 울이를 마치 어릴 적 나와 동일 시 하는 듯했다. 어린 시절 내가 엄마에게 원했던 모습을 울이를 통해 만족하려는 듯했다. 한없이 사랑해 주는 마음, 무조건적 사랑, 나만 바라봐주길 바랐던 엄마를 향한 나의 갈증. 이제와 그 목마름을 내 아이에게 마치 내게 주듯 퍼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쏟았는데, 그 아이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난다. 심지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그 아이에게서 들을 때면 정말이지 억울하다. 항상 그렇지만 나는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내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원인은 울이가 제공했다. 하지만 결론은 꼭 ‘엄마는 너무 감정적이야!’가 된다. 원인을 제공한 울이가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내가 문제가 된다.


방청소를 원인으로 한바탕 화를 내고 화가 가라앉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감정적 이면 안 되는 거야? 내가 감정에 솔직하면 안 되는 거야? 감정을 조절하고 숨겨야만 어른인 거야? 그래, 어른이라고 해서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불합리해!’ 자기 합리화가 강한 나는 나를 대변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곧장 울이에게 위 내용을 말했더니 본인은 학교 가야 하니 학교 다녀와서 얘기하자고 말하고는 유유히 이 상황을 빠져나갔다. 뭔가 이번에는 내가 이긴 것 같은 느낌!


울이는 그렇게 등교하고 나는 모악산으로 출근했다. 쉬는 날은 모악산과 함께하면 피로를 싹~ 날릴 수 있으므로 자기 합리화가 굉장히 잘 된 상태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산하고 안전하게 하산하였다. 모악산 아래 즐비한 식당 중에서 내가 애정하는 콩국수 집이 있어 들어가려는 데 오늘은 휴무란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아, 소댕이도 콩국수 좋아하는데…’ 얼마 전 프랑스로 이민 간 동생이 떠오른다. ‘갑자기? 갑자기 이소댕이 떠오른다고?’ 물론 나는 동생을 자주 생각한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 피붙이이자 진심 나의 베스트프렌드, 소울메이트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멀고 먼 프랑스로 이민을 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주 통화하며 일상을 나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서 이소댕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는 이소댕이 콩국수를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동생은 감동이 큰 사람이다. 특히 먹는 것에. “언니, 서울식 콩국수랑 전라도식 콩국수랑 다른 거 알아? 서울식은 콩국물만 들어가서 부드럽게 묽으면서 담백해, 전라도식은 미숫가루 같은 곡물가루가 함께 들어가서 되직한 듯 텁텁함이 있으면서 더 고소해” 먹는 것에 진심이고, 진심인 것에 감동 표현도 적극적이다. 한 입, 한 입마다 감탄사 연발이다. 뷔페에 가면 동생의 어휘력이 이렇게 좋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감동에 적극적인 이소댕과 감정에 적극적인 이효댕. 이 대조적인 한 문장이 내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먹고 싶은 콩국수는 먹지 못하였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열쇠를 얻은 것이다.


우리 동생은 감동에는 적극적이지만 감정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나는 감동에도 감정에도 적극적이다.

그렇다면 감정에도 적극적인 나는 정말 문제가 있다.


울이에게 계속 지는 느낌이 싫어서, 급한 마음에 찾은 자기 합리화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정의 표현에는 ‘방식’이 있다. 감정에 솔직한 것은 좋다. 하지만 감정에 끌려다니는 상태라면 그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폭발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표현이어야 어른다운 솔직함이 되는 것이다.


‘감정적인 것’은 감정에 휘둘려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상태 즉, 폭발에 가깝다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되 행동을 조절하는 상태로 자기 조절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갑자기 크게 화를 내는 사람, ‘엄마는 어른인데 자기감정을 왜 다스리지 못할까?’라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아이를 혼내야 한다면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알려주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반면 화를 내는 것의 목적은 내 감정을 중심으로 감정을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혼내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엄마의 말이 ‘지시’가 아닌 ‘이해’로 다가갈 수 있다.


그렇게 콩국수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지만, 나는 어른되려면 한참 멀었다.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솔직한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감정을 데리고 가는 어른이 되려고 한다. 울이에게 ‘엄마도 화가 날 때가 있어. 그건 너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야. 엄마도 어떻게 감정을 잘 전할지 배워가고 있으니까 너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주면 좋겠어.’라고 말해줘야겠다.


오늘의 깨달음을 통해 우리 아들과 말을 주고받기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더 깊은 관계를 기대해 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어른되려면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