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아이

믿음으로 키우기

by 효댕

요즘 아이들, 참 적응 안 된다. 나 때는 말이야~가 꼰대의 유행어로 번질 만큼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나 또한 세대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우리 딸만 봐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로 보인다. 일단,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의지도, 의욕도 없어 보인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누워있는다. 오죽하면 별명도 와상환자다. 어디 아프지 않고서야 왜 저렇게까지 누워있을까 싶다. 진짜 아파서 누워계시는 와상환자분들께는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하지만, 우리 딸도 아파서 누워계시는 분들만큼이나 누워있는다. 마음이 아파서 누워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보이는 것만 취합해서 보자면 엄청 게으른 아이 같다.


유미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다. 유미에게서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이다. 특별활동 강사로 활동하던 나는 유미네 학교에도 출강을 했었고, 시기와 질투였을까 유미는 학교 언니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듯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주눅이 드는 듯하더니 4학년 때 전학을 한 후 또래 친구들과 교우관계에서 소외되는 것이 느껴졌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좀 되었는지 친구들과 조금씩 어울리는 듯하였지만 두, 세명의 친구들과 협소한 관계였다. 그 후부터 소외를 당하는 듯, 스스로 소외를 하는 듯 무리를 겉도는 교우관계가 이어졌다.


다 표현하지 못했겠지만,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그때부터였을까 유미는 나름의 위안을 찾는 방법으로 웹툰을 자주 봤고, 웹툰은 유미에게 일상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유미는 미술을 전공하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입시미술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입학 후 유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웹툰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유미는 현재 특성화 예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여기에서 꼬인 걸까? 특성화 예술고등학교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아이의 성적과 전공, 고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 앞으로의 비전 등을 통틀어 봤을 때 유미에게 딱 맞는 학교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관심도 없는데 인문계 일반고등학교에 가서 국영수사과에 치이느니, 미술전공과목의 비중이 높은 교육과정이 훨씬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에서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 조금 가미된 것은 특성화 예술고등학교는 내가 어릴 적 동경했던 학교라는 것이다. 흔한 레퍼토리지만 어릴 적 우리 집은 모녀가정에 가난했고, 가난한 아이들은 특성화 예술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다. 지금이야 한부모, 다문화, 조손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시대지만 나 어릴 적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열등감 속에서 성장한 나는 유미를 통해 나의 열등의식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못난 엄마다.


유미가 특성화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교우관계가 더 극단적으로 된 것이다. 아는 친구 하나 없이 홀홀 단신으로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고 2학년이 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물론 이유는 많다. 일단, 학교 특성상 개성이 엄청 뚜렷한 친구들이 모여있다. 저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을 유미는 참 많이 힘들어했다. 사교적이지도 않은데 성격이 원만하지도 않고, 포용력도 별로 없는 유미가 어울리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겉돌고 있다. 지구를 맴도는 인공위성처럼.


이틀 전 시작한 기말고사 첫날. 시험을 마치고 나온 유미는 화가 잔뜩 나서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름이 문제라고 했다. 나름 하지 말고 기준을 높이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힘을 주어 말해줬다. 요즘 애들은 절실한 게 없다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현실적인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유미는 더 화가 났다. 나는 대문자 T다.


20분을 달려 집에 도착하는 동안 유미는 계속 화를 냈다. 유미가 유미에게 화를 냈다.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림도 못 그리고 대학교도 못 갈 거야. 나는 미래도 없어, 앞으로 내가 뭘 하면서 살겠어, 나는 망했어, 살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전에 내가 유미에게 했던 말들은 뭐였던가… 내가 이렇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없는 의욕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성격을 바꿔줄 수도 없는 무능한 엄마였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각 자의 공간으로 숨어버렸다.


‘살고 싶지 않아’ 그 말이 계속 마음에 쓰여 몇 번이고 유미의 방을 몰래몰래 열어보았다. 잘 누워 있나, 숨은 쉬고 있나 행여 정말 극단적인 생각으로… 그다음 말은 하지 않기로 하자. 그러기를 몇 번, 유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전학 이야기를 했다. 전학이 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매번 유미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또 전학 이야기를 한 건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내 욕심으로 이 학교에 붙잡아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아닌지 유미는 선뜻 전학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그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랑의 단어를 다 가져와 붙여도 부족할 거다. 유미가 혼자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다 메어온다. 마음이 울컥하고 답답해서 헛기침이 나올 정도다. 이럴 때 보면 나 F인데. 유미 아버지도 유미를 엄청 사랑한다. 본인이 얼마나 유미를 사랑하고 걱정하는지 굳이, 유미 방 앞에서 큰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척 유미에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것을 보면.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은 부모로서 마음이 참 무겁고, 때로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무기력한 아이로 자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만 우리 아이가 길을 잃지 않았으면, 혹시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알 수 있었으면 할 것이다. 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걸음 떨어져 아이를 바라본다. 이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지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 시기를 받아들여 보려 한다.


지금의 유미는 ‘게으른 아이’라기보다는 불안과 외로움, 자기 효능감 부족 속에서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뭘 해도 의미가 없어’, ‘내가 노력해도 잘될 것 같지 않아’라는 생각에 빠져 무기력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 유미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와 관심을 지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감각이 예민하기도 하다. 친구들과의 관계보다 혼자만의 작업을 더 편하고 의미 있게 느낀다. 유미의 내향적인 기질은 예술적인 감수성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자기 안에 갇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감과 불안이 커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에서 기력과 의욕이 넘쳐나는 것도 이상한 거다.


실제로 웹툰작가라는 목표는 있지만 너무 멀게 느껴질 거다. 여태 해왔던 노력에 대한 보상 경험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평소에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해 줄 기회가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잘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일 수도 있고, 한편으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아무것도 안 하려는 방어심리일 수도 있다.


유미는 이미 자기 삶에 대해 불안하고 지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로 불안, 관계 불안 속에서 안전한 ‘정서적 공간’ 일 것이다. “요즘 마음이 어때? 무엇이 제일 걱정돼?” 같은 감정 중심의 질문을 던져본지가 언제인지. 해결책보다 공감이 먼저였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게으름’이라는 프레임 대신, ‘기운을 잃은 상태’로 보기로 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지쳐있다고 인식하기로 했다. ‘네가 하기 싫은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오히려 지금은 쉬어야 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웹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미가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웹툰이 주는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즐거움에 대해, 연재되는 웹툰을 기다리는 즐거움은 또 얼마나 큰지. 웹툰이 우리 유미의 삶에 커다란 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해 조급하게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지금의 유미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우리 유미가 왜 이러지?’가 아니라 ‘지금 유미는 어떤 마음일까?’라고 묻는 것으로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믿음으로 다시 잃었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내일은 또 팩트폭격을 날릴지도 모른다. 나도 사람이다. 이 글을 출력해서 내 방문 안쪽에 붙여 놓아야겠다. 주의 기도처럼 매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몇 달 전 ‘50이면 육아가 끝날 줄 알았다(로렌스 스타인버그 저/저녁달 출판)’ 책을 본 기억이 난다. 나때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성인기가 우리 때에 비해 9년이 늦어졌다고 한다. 유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내 육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졌으니 나도 그 의견에 기꺼이 동의하는 바이다. 이 시대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유미도 어른이 될 것이다.


유미의 두 발로 힘 있게 땅을 딛고 온전히 독립적인 성인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지금의 유미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유미가 ‘가장 나답게,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자 최고의 것은 우리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는 것. 그 믿음이 우리 아이를 다시 움직이게 할 거니까!


사랑한다, 그리고 늘 네 편이라 걸 잊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