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 헤어질 결심

나는 오늘도 헤어질 결심을 한다

by 효댕

커피, 적당한 소음, 오래 머물러도 눈치 안주는 대형카페는 글 쓰는데 최적의 환경이다. 브런치 작가로 승인받고 처음 쓰는 글이다. 좋다는 말로 내 기분을 설명하기에는 브런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아주 세고 자극적인 단어로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째진다! 심장이 두근두근, 불만 붙이면 로켓발사하듯 우주를 향해 튀어나갈 것만 같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익숙한 것들과 어느 정도 이별을 완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또한 기쁜 일이다.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내 인생의 전환점은 내가 마흔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흔이 되기 1년 전부터 나는 이미 마흔 그 이상의 마음으로 오십을, 육십을 준비했다. ‘50에 읽는 논어’로 시작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안내서’까지 불안한 마음은 책으로 달래고, 불안한 미래는 돈으로 달랬다. 타고난 내 성격이다. 계획형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충동적이고, 일의 추진에 있어서는 상당히 저돌적이다. 계획을 세워도 끈기 있게 하는 성격도 아니다. 공부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공부하고, 다시 계획하고, 다시 실행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한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쉬지 않고 계속 그렇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마흔은 달랐다. 살던 대로, 하던 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우연히 들은 엄마 친구분의 이야기로 내 직감은 결심이 되었다. 엄마가 친구분 이야기를 하시길 “우리 친구는 타고난 성격이 일하기를 좋아해, 그래서 없는 일도 만들어한다니까! 일을 성격대로 하니까 몸에 병이 나는 거야, 그럼 병원에 가서 몇 달이고 누워있어~ 몸이 조금 나아지면 또 일을 하는 거야~” 평생 그렇게 일과 입원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며 엄마는 친구를 걱정하셨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나는 내 걱정을 했다. 번뜩, 성격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직감은 결심이 되었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어찌어찌 보내고 23살에 남편을 처음 만나 아이 셋을 낳았다. 남편도 나도 결혼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그때에도 나는 단기, 중기, 장기 계획표를 작성해 거실에 붙여놨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남편은 그런 나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계획적이지 못하고 꼼꼼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 때문이 있으리라. 19년째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은 그런 나를 덜 좋아하는 것 같다.


미래를 위한 빌드업은 그때부터였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심한 입덧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전업주부가 되었는데 집에 있는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해야겠다!’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고등학교만 졸업한 남편은 1학년으로 함께 입학했다. 방송대를 선택한 것은 일을 병행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학비가 저렴했다.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우리는 학교에 갔고, 둘 모두 열심히 한 덕으로 무사히 4년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는 내가 다시 직장에 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둘이나 두고 돈을 벌러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경력단절여성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취업이 아닌 창업으로 관심을 돌렸다.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사업가 스타일인 것을 나도, 우리 남편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말을 무지 잘한다. 사업 안 했으면 사기꾼 됐을 거라고 한 두 번 듣는 말이 아니다.


그 시기에 남편은 목조건축학원에 다니고 있었고(가만 보면 우리 남편도 가만히는 안 있는다) 나는 우연히 취득한 공예지도사 자격증으로 간간히 학교에 출강을 나가고 있었다. 남편은 총각 때부터 자동차를 도장하는 일을 했는데 미세하게 분사되는 페인트에 본인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내가 오빠보다 9살이나 어리니까 걱정 말라고!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오빠는 애들만 잘 보라고!’ 나중에 그 말이 씨가 되어 남편은 자동차 일을 그만뒀고, 나는 학교뿐 아니라 문화센터, 복지기관 등 출강 요청이 들어오는 족족 발이 손에 닿도록 뛰어다녔다. 그렇다고 우리 남편이 애들만 본 것은 아니다. 목조건축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집도 짓고, 공방도 짓고, 수업에 필요한 목재 교구들도 준비해 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우리는 이 업계에서 말만 하면 다 알만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숨 가쁘게, 바쁘게 살았다. 남편과 같이 사업체를 창업해서 운영한 지는 올해로 11년 차다. 11년 동안 나는 다시 대학원에 가서 평생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숲해설가 자격증도 취득했다. 핏덩이 같던 큰아이는 18살, 아래로 동생들은 16, 13살이 되었다. 애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둘 다 일하느라 알뜰살뜰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했다. 하원시간을 못 맞춰서 하원하는 차를 타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야 했던 큰아이, 깜깜한 밤에 혼자 학원 차에서 내려 엄마를 기다리며 공포에 떨었을 둘째 아이, 젖도 못 뗐는데 돌도 안된 엄마 품에서 떨어져 어린이집에 보내진 막둥이까지… 그때의 서러움은 말로 다 못한다. 물론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서러운 것만 생각난다. 난 지금도 가끔 그때의 꿈을 꾼다. ‘우리 유미 어디 있지? 집으로 갔나, 어린이집으로 갔나? 내가 아이를 잃어버렸나? 우리 유미 어디 가서 찾지?’ 꿈에서 깨면 어김없이 베갯잇이 눈물로 젖어있다.


악착같이 억척스럽게 살았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그렇게 살았다. 성격대로 살았다. 과거에 했던 일에 현재의 일을 추가하고, 미래의 일을 계획하며 빈틈없이 일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다. 집에서, 직장에서 남편과 매일 얼굴 맞대고 일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나만의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카페를 운영하게 된 지도 벌써 3년 차다. 딱, 내 나이 39살에 시작한 일이다.


마흔이 되는 것은 두려웠고, 어쩌면 설레었다. 성격대로 살지 않으려고 정신을 부여잡고 살았지만 하마터면 카페 운영을 또 열심히 할 뻔했다. 지금 와 깨달아서 다행이지만 나는 일중독자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는 돈도 시간도 투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태 아이들과 제대로 된 여행한 번 가보지 못했다. 나의 과거와 현재는 엄마 친구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로 구분된다.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더 이상 근로소득이 최고 가치 있는 것이며, 일한 만큼 버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흔이 되면서 제일 먼저 공부하고 실행한 것이 투자였다. 현재 다양한 성격의 자산을 섞어 자산배분투자를 실천하고 있으며, 근로소득이 아닌 투자소득으로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진짜 부자들은 그렇게 돈을 불린다고 하더라를 일 중독에 빠져 사느라, 너무 늦게 알았다.


그다음 실행한 것이 건강관리다. 남편은 7년 전 크론병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만성 두통까지 호소하며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녔다. 크론병은 다행히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잘 관리가 되고 있지만 만성 두통은 원인도, 진단도, 관리도 불가능했다. 검사란 검사는 다 해보고 그 비싼 MRI도 연달아 두 번을 찍었다. 그때마다 한결같은 대답이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건강한 편이세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남편은 술도 담배도 안 한다. 하루에 1시간 이상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하며,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고 기름기 있는 음식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남편은 계속 두통을 호소해 왔다. 안 되겠다 싶어 두통에 관한 전문서적과 에세이 몇 권을 사서 읽었는데, 만성두통 특히 긴장성두통은 환자 스스로 통증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후로 책에서 도움이 될 만한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 하나씩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두통을 관리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실천 중인 건강 습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저탄고지 식단 :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과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는 식단

간헐적 단식 : 하루 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나머지 8시간 동안 식사하는 방식이다.

식전 과일 섭취 : 식사 전에 과일을 먼저 먹어 과식을 방지한다.

해독 주스 섭취 : 채소와 과일을 찐 다음 갈아서 마시는데 배변활동을 돕고 해독작용이 있다.

우리 집에는 좋은 블랜더가 없다는 핑계로 해독 주스는 매일 언니에게 얻어먹는다.


바쁘다고 배달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듯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 번째로 내가 실행한 것은 취향이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이 단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실용 독서를 한다고 생각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독서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안위를 얻고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친구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냥 애초에 친구가 없다. 함께보다 혼자가 편하고, 친구보다 책이 좋다. 그래서 혼자 책을 본다는 것은 내 인생에 최고의 기쁨이자 행복이다. 우리 남편에게 한 때는 ‘어떻게 인생을 책으로 사니?!’라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브런치 작가가 된 지금, 우리 남편은 나를 “이작가~”라고 부른다. 웃기는 놈이다!


책 자체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 모습도 모두가 내 취향이다.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탐독하며 더 풍성한 독서 생활을 하고 있다.(이럴 때 스멀스멀 본래 성격이 올라온다. 독서도 더, 더 열심히 하려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실행을 계획한 것은 여행이다. 7월 21일부터 8월 13일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프랑스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사는 게 바빠서 제대로 가족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어, 크게 마음먹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 떨린다. 여행은 뭐, 먹는 거예요? 할 정도로 여행에 대해 문외한이다. 무지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소울메이트 이소댕이 프랑스에 있다. 첫 여행에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이소댕이 있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가려한다.(마음은 가벼운데 양손은 무겁게 생겼다. 올 때 김치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가야 하는 미션이 있다) 워낙에 목적 없이 어디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여행에 관한 책 한 두 권은 읽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의 글은 문명길 님의 떠나기 어려운 마음, 떠나야 하는 이유(인생을 다채롭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좋은 산머루처럼 햇빛을 견디고, 찬바람도 맞아야 할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비를 피해야 하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길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경험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행도 숙성된다. 여행이 꼭 편할 수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행에도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여행 내가 꿈꾸는 여행을 만들기 위해선 노력도 필요하다.”


좋은 여행이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합리적인 이 말에 마음이 안심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체감 나이는 오십둘, 내 실제 나이는 마흔둘이다. 일찌감치 익숙한 것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일중독자로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처럼 일을 하고 있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이는 못 벌었을 거다. 적당히 일하고 투자로 자산을 키운다. 책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존중하고, 내가 원할 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글까지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이러려고 카페를 하겠다고 한 것이었으며 가끔은 내가 이래도 되나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초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초심을 잃는 순간 나는 또 카페 운영을 엄청 열심히 하게 될 거다. 동종업계에 계시는 사장님들의 눈치가 보이지만, 동종업이라고 해서 사업을 하는 목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 너그럽게 봐주시길…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데, 개같이는 벌었으나 아직 정승같이는 못쓰고 삽니다. 그냥 사람 사는 것처럼 삽니다.


물론, 헤어질 결심은 하였으나 아직 헤어지지 못한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운동을 안 하던 습관, 늦게까지 이어지는 아침잠, 쓸데없이 끓어오르는 열정 등이 그렇다. 무의식 중에 우리는 익숙함에 빠져 살아간다. 익숙함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오늘도 익숙한 무언가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