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초보 가족의 23일 프랑스 여행기
굳이 싫어한다는 표현까지는 자제하는 편,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33가지 나열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성격인 것 같다.
내 공간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공간 자체가 바뀌는 것은 불편하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내 집에 있다(특히, 책).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 것은 내 일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효율적인 거 좋아해요. 돈 되는 거 좋아해요. 생산적인 거 좋아해요.”
내가 아는 여행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돈을 써야 하고 생산적인 것보다는 소비적인 것에 가까운 일이다. 여행을 자주 다녀본 적도 없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동생 덕분에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다. 그마저도 이제 동생이 프랑스로 이민을 가면서 어렵게 된 일이다.
내 짝꿍 두댕과 아이 셋과 다니는 여행은 길면 1박 2일, 보통은 무박 당일치기다. 다행인지 사춘기인 고2, 중3 아이들은 짧은 여행에 불만이 없다. 그 짧은 여행도 안 가려고 난리다. 아직 초6 막둥이는 활동적인 거 좋아해요. 스릴 넘치는 거, 체험하는 거, 물놀이, 흙놀이 등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을 원하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숙제다. 막둥이만 데리고 다니는 무박여행만 근근이 해나가고 있다.
이런 내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일단, 아이들이 가장 큰 이유다.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데리고 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은 항상 나에게 밀린 숙제 같은 느낌이다. 그 숙제를 이번 참에 한 번에 끝내보려고 얄팍한 수를 쓴 것이다.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동생과 함께여서 가능한 결심이다. 이민 간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아 본인도 아직 바쁘고 정신없을 터였지만 고맙게도 우리 여행에 엄청난 지지와 지원, 참여를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이유는 조카들이 보고 싶었고 김치와 고추장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렇게 두댕과 아이 셋, 김치와 고추장을 비행기에 싣고 프랑스로 떠났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일상의 그리움
총 23일의 긴 여행이었다. (앙제에서 8일, 샤모니에서 7일, 안시에서 5일, 파리에서 3일)
샤모니 몽블랑(Chamonix-Mont-Blanc)은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맥 깊숙한, 유럽 최고봉 몽블랑이 있는 곳이다. 여름엔 하이킹으로, 겨울에는 스키의 성지라고 한다. 알프스 마을 특유의 목조 건물들은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무지하게 아름답다.
여행의 전체일정은 동생부부가 계획했고, 알려줘도 나의 관심이 일정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아이 셋을 잘 챙겨야 했고, 빠트린 서류나 짐은 없는지, 김치가 부풀지 않고 포장 그대로 잘 도착할는지, 프랑스 공항에서 입국심사 경로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실질적인 문제들에 떠나기 전부터 이미 패닉상태였다. 여행일정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샤모니에 도착했을 때 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감동이었다. 평생에 한 번 와보기도 어려운 곳을 이렇게 성의 없이 오다니! 갑자기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압도적인 웅장함과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감동은 그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감동이었다.
샤모니에서 지내는 7일 동안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지냈다. 일어나면 산으로 가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을 보고, 산을 걷고, 그 풍경을 눈과 마음과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몽블랑 산맥에서의 코스모재즈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재즈 축제로 해발 수천 미터 고도에서 펼쳐지는 자연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로 유명한 공연이다. 이런 공연을 직접 보다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샤모니에서 꿈같은 6일을 보내고 이동한 곳은 안시(Annecy).
알프스 인근 휴양 도시로 운하와 다리가 이어진 구시가지가 동화 속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알프스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맑고 깨끗한 안시 호수(Lac d’Annecy)는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모든 분들은 안시를 100% 즐기는데 나는 못 즐겼다는 것. 안시에서부터 본격 집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매일 읽는 책, 책상에서의 끄적거림, 마음을 정리하는 글쓰기,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맛난 집밥.
그 와중에도 나를 황홀하게 했던 것은 호수에서의 불꽃축제, 1시간가량 이어지는 불꽃축제는 집생각을 잠시 멈추게 할 정도였다. 나는 이 날 저녁부터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외로움을 많이 타는 집순이입니다. 남편바라기, 남편 없이는 잠도 못 자요.
어릴 적 엄마와 떨어져 지낸 날들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였을까,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탄다. 두댕과 결혼생활을 하며 집이 아닌 곳에서 잔 적은 거의 없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자더라도 두댕과 함께라면 불안하지 않다. 프랑스에 오고 10일쯤 지나자 나도 모르는 불안감이 조금씩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두댕을 안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샤모니와 안시, 12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동생 집이 있는 앙제로 복귀하는데 차로 8시간이 걸렸다. 어른들도 그렇게 장시간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이제 4살 되는 우리 조카, 조카 보느라 애쓴 우리 동생 사랑합니다. 앙제로 돌아와 조금은 평범한 일정을 보내면서도 캥거루 공원이며, 앙제 성이며 동생부부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써주었다.
“프랑스 날씨는 덥지 않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샤모니와 안시는 여름에도 비교적 선선하고 앙제와 파리도 20~28도 정도로 해가 좋고, 습도가 없어 바람도 시원하다.
“바캉스 기간이 길다”
연속 휴가를 쓰는 경우가 많아 최대 한 달가량 된다고, 바캉스에 진심이라 옷이나 가구, 차에 많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바캉스에는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휴대폰 사용량이 많지 않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한국과 비슷하다고는 하나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특히 식사 중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검소하고 차를 오래 탄다”
차량 보유기간이 한국보다 길고, 새 차 구매 빈도도 매우 낮다. 옷을 오래 입는 경향이 있다. 동생네 빌라 주차장만 봐도 오래된 차들이 많이 있는데 유독 깨진 사이드미러, 라이트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차들이 많다. 차를 수리하는 공임비가 비싸서 그런 것 같다.
“고용 안정이 잘 되어 있다”
프랑스는 해고 규제가 엄격하고, 해고 시 보상금이 크다. 재택근무하는 제부를 보고 집에서 일해도 되냐, 회사에서 잘리는 거 아니냐 했더니 프랑스는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고, 자기 일 열심히 하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 그 밖에도 나이를 떠나 남녀 간의 애정표현에 적극적이고 표현에 있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
- 눈치 안 보는 것은 좋은데 흡연도 눈치 안 보고 한다는 것
- 대형견이 엄청 많다는 것(사람에게 절대 달려들지 않는 것을 보면 훈련이 엄청 잘 된 것 같다)
- 대규모 농업에 입이 떡 벌어진다는 것(유럽 전체를 다 먹여 살리는 농업 생산량이란다)
- 프랑스 사람들은 매일 바게트를 먹는다는 것
- 꽃의 나라답게 어디를 가도 꽃이 천지에 널려있다는 것 등등이 있다.
프랑스가 조금은 친숙해질 때가 되니 내가 집으로 돌아가 때도 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샤를드골공항이 파리에 있어서 우리의 마지막 일정을 파리로 배치했다. 파리(Paris)는 프랑스 북부, 센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프랑스의 수도다. “예술, 패션, 역사의 도시” 에펠탑이 있고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세계적인 명소가 모여있는 곳이다. 앙제에서 고속열차 떼제베를 타고 파리로 이동 -> 택시 타고 숙소 -> 도보로 센 강 도착.
공항 가는 날을 제외하고 파리 관광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뿐이라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1일 차는 파리시내투어, 2일 차는 루브르박물관’ 이틀 모두 [가이드랩]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와 함께 하기로 했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미술을 하고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은 가이드의 설명이 꼭 필요했는데 운이 좋게도 ‘기묘한 미술관’ 책을 시리즈를 집필하신 전병관작가님의 가이드를 직접 받을 수 있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집에 오자마자 그 책을 시리즈로 구매했다). [가이드랩] 가이드님들과 럭키 2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즐거운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이 끝나고 나니 일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됐고 사춘기 아이들과의 가족여행은 위험하다는 것, 그래도 두댕과 함께라서 참을만했다는 것, 한국 음식은 아주 맛있다는 것과 프랑스 문화 차이를 경험하며 너무 급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여행은 짧게 자주 다니자, 평소에 맛있게 밥을 해 먹자,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치안 걱정 없고 소매치기 없고, 비흡연을 권장하는 보건국가! 대한민국 만세~!
집으로 돌아와 일상을 살고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떠나봐야 알 수 있다. 내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떠나세요. 집으로 돌아올 때 행복이 집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이번 여행이 꽤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당분간 여행 가자는 말은 하지 않을 듯싶다.
사랑한다 대한민국, 즐거운 나의 집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이 허락한다면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나라를 선택해 그곳에서 삶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삶은 느리고, 한국의 삶은 빠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와 잘 맞는 삶을 선택하는 것. 프랑스에서 잘 지내는 동생을 보며 안심하게 되었다. ‘너와 잘 맞는 곳을 찾았구나, 너의 길을 가겠구나. 응원한다 멋진 이소댕!’
물론 나는 내 나라 한국에서 잘 살 사람이다. 프랑스를 다녀온 덕분에, 내가 내 나라와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사랑한다 대한민국!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여행을 함께 해준 동생 부부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