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내게 남긴 질문"
며칠 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봤다. 지난겨울 서울에 가서 시카고를 본 이후 내 생에 두 번째 뮤지컬이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지역에 살고 있지만 문화생활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 한다. 기회가 되면 서울로 가거나 가까운 곳의 공연과 전시를 챙겨 아이들과 보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걸 못 해줘서…’라는 마음의 빚이 남아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내 남편 두댕은 공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빠들은 몰라요 ~ 엄마들은 다~ 그런 마음이 있어요)
지킬 앤 하이드, 이번 공연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자리였다. 특별히 큰 기대나 설렘은 없었다. 평소에도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에 대해 쉽게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공연 역시 화려하고 빛나는 것 중 하나니까,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담담하게 관람하려 했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자 내 마음은 모조리 빼앗겨버렸다. 지킬에게 빼앗긴 것이냐, 하이드에게 빼앗긴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신성록 배우님에게 빼앗긴 것이냐! 내게 남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대 위의 음악과 조명, 배우들의 숨 가쁜 연기와 노래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내 안에 깊고 길게 머물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공연 그 자체의 여운보다 한 배우의 모습이 자꾸만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난 남자가 있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애도 셋이나 있는데~)
노래와 연기, 눈빛 하나까지도 무대를 채우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저 무대를 위해 쏟아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었다.
‘이 무대를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실제로 지킬 앤 하이드는 남자주인공의 활약이 엄청 많은 작품이다). 공연이 끝나고 얼마나 뿌듯할까.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또 얼마나 긴장되고, 다음 공연의 환호가 얼마나 기대될까.’ 그저 잘생기고 멋진 배우가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한 생을 바쳐 달려온 사람의 꿈과 열정이 무대 위에서 느껴졌다.
공연을 보고 와서 며칠이 지나도 신성록 배우님의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삶을 저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가?”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가 자신의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며, 내 삶의 무대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멋지다는 감탄에서 시작했다. 키가 큰데 얼굴이 주먹만 하고, 피부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목소리는 왜 이렇게 멋진지, 몸은 다부지고 섹시미가 흘러넘쳐… (배우님의 매력은 어차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외모도, 목소리도, 무대를 장악하는 힘도… 이런 것들은 나 같은 아줌마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넣기에 부족함이 한 개도 없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진짜로 내 마음을 흔든 건 그가 공연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한 장면, 한 소절, 한 모습까지 진심을 다해 내뿜는 모습, 순간순간을 불태우듯 살아내는 그의 에너지가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의 무대가 특별했던 것은 아마도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비교 때문일 것이다. 신성록 배우님은 82년생으로 나보다 2살 많다. 나이도 비슷한데, 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전부를 걸고 무대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을 걸고 있는가? 내 무대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사실, 공연을 보고 난 뒤의 긴 여운은 배우에 대한 감탄과 함께 내 삶에 대한 질문이었다. 무대를 가득 채운 그의 열정은 결국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니?”라고 물음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무대가 있다. 공연처럼 화려한 조명이나 큰 박수는 없지만, 내가 매일 서 있는 자리와 맡은 역할이 바로 나의 무대다. 집에서는 보살핌과 사랑을 전하는 엄마와 아내로서, 가게에서는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는 사람으로서, 나는 과연 얼마나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신성록 배우님을 통해서 배운 것은 결국 태도였다. 단순히 연예인이라서, 잘생겨서, 노래도 잘해서, 키도 크고, 섹시해서 감탄하는 멋짐이 아니다. 자신의 무대에서 흔들림 없이 진심을 다하는 그의 태도가 멋진 것이다. 그 태도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나 같은 아줌마들의 마음도 흔들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남는 긴 여운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멋지게 산다는 것은 특별한 무대에 오르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는 일이다. 조명이 꺼지고 박수가 없어도, 그 무대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대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여운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내 아이들과 그리고 남편 두댕에게. 그들에게 남긴 여운이 다시 그들의 삶을 멋지게 빛나게 해 주기를 바라며!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다시 말하지만, 신성록 배우님은 진심 멋있다! 내면도, 외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