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 you cook with me?”
여성이 임신을 하면 다양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유방이 발달하는 거다.
아이를 출산할 때쯤 되면 유선이 발달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3일 정도가 되면 젖이 돌기 시작한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기 시작하면서 젖몸살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방 전체가 단단하게 굳는 증상으로
빨리 풀어주지 않으면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무엇보다 산모가 고열과 몸살에 시달릴 수도 있다.
사지를 쥐어짜는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 살았구나’ 한숨 돌릴 때쯤 ‘나 죽는다’ 젖몸살이 오는 것이다.
유두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퍼져있는 수많은 유선에
젖 대신 돌멩이가 들어가 꽉 메워버린 듯하고,
꽉 막힌 유선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하다.
여기저기서 잡아당기는 듯한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은
옴짝달싹 못하게 가슴 전체를 쥐어짠다.
따뜻한 수건으로 유방 전체를 감싸고 주물러 줘야 하는데,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아리고, 아픈데
온 힘을 다해 주무른다고 생각해 보라.
이쯤 되면 사지가 찢기는 출산의 고통은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 된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아기가 젖 빠는 힘이 약해서 유선이 막힌 거라,
아기 아빠가 힘껏 젖을 빨아내면 유선이 뚫린다는 거다.
옛날에는 남편들이 젖을 빨아내서 젖몸살을 이겨냈다고 하는데,
이게 진짜 그랬다는 것인지, 우스갯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
모유 수유기간은 통상 최소 6개월, 평균 12개월, 완전한 기간은 24개월까지로 보는데
수유기간 동안 어미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젖을 먹이는 동안 어미는 제 새끼의 생존과 직결되는 근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젖몸살을 이겨내며 핏덩이 같은 애 셋을 모두 젖을 물려 키웠다.
나는 아가씨 때부터 가슴이 작았는데, 아이를 낳고 젖 먹일 때가 되니
놀라울 정도로 가슴이 부풀었다.
애들이 하루가 다르게 어찌나 토실토실 살이 붙는지,
동네 어르신들은 애들 엄마 젖이 참젖인가 보다며 시어머니께 나를 자주 칭찬하셨다.
큰아이 18살, 작은아이 16살, 막둥이 13살.
이제 나보다도 키가 훌쩍 크게 자란 이 녀석들에게 나는 아직도 밥줄이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내가 자기 밥줄인 줄 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어미에서 엄마로,
젖줄에서 밥줄로 되기까지 20년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일하면서도, 아픈 와중에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밥은 내가 한다.
“여보, 아직 세상은 말이야~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더러운 세상이야.”
밥을 하며 남편에게 자주 던지는 말이지만, 두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두 귀로 듣고 마음에 담았다면 지금쯤 우린 함께 밥을 하고 있겠지…)
가정 내 불평등과 일하는 엄마가 짊어져야 할 육아, 가사노동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제 모성은 아름답지 않다.
남편은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빈도수가 높진 않지만,
한 번 할 때 확실히 티가 나는 스타일이다.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시키지 않아도 주관적으로 하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고
내가 허구한 날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더러운 세상을 외쳐대며,
결혼생활 20년 만에 쟁취한 결과물이다.
“그래도 밥은 안 한다!”
내 새끼들 먹일 밥을 지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밥을 차려내면
남편만 잘 먹는다. 정작 이 녀석들은 잘 먹지도 않는다.
배달 음식, 편의점 간식에 입이 길들여져 엄마 음식에는 손이 안 간다.
이런 날이 반복될수록 허탈하고 기가 빠진다.
‘이 녀석들이 언제부터 편의점에, 배달음식점에 다른 엄마를 둔 것이냐.’
“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는 밥줄이 아니라,
바깥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게 돈을 벌어다 주는 밥줄이 된 듯하다.”
젖을 먹이던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먹이는 일은
늘 힘들었지만, 엄마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먹인 젖과 밥은 그저 영양분이 아니었다.
내 살을 나누는 일이었고,
내 온기였고,
내 시간과 마음이었고,
내 희생이었으며
내 온몸으로 빚은 사랑이었다.
이제 와 젖줄과 밥줄, 모성과 노동을 분리해 생각하려니 서글프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는데,
노동적 측면에서 보면, 밥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비효율적인 일이다.
한 번 먹고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서 잠깐 눈치만 보다 결국 버려지기 일쑤다.
아빠가 밑반찬을 먹지 않으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먹지 않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김치, 단무지는 손도 안 대고,
특히 작은아이는 비릿한 생선류, 물컹한 버섯류는 입도 안 댄다.
큰아이는 어릴 적 한동안 밥을 볶아주거나, 말아주거나, 싸줘야 했고
남편은 국이 있어야 밥을 먹는다.
매일 국을 끓여야 하고, 메인 반찬도 한두 가지는 꼭 해야 한다.
장보기 → 설거지 → 주방 정리 → 쌀 씻기 → 밥 안치기
국거리 다듬기 → 국 끓이기 → 반찬 만들기 → 상 차리기
식사하는 사이 추가해 달라는 반찬이 있으면 챙겨줘야 하니
함께 식사를 못 할 때도 있다.
식사가 끝나면 상 치우고 설거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혼자서 맨날 해보면 알게 된다.
이 소모적인 일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허탈하게 하는지.
장만 봐다 줘도 편할 텐데,
상만 같이 차려줘도 시간이 절약될 텐데,
밥 먹은 후 설거지만 해줘도…
그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다.
젖이 달린 어미만 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암묵적으로 나를 소진시키고 있다.
“엄마, 나는 결혼은 못 할 것 같아.
결혼하면 주어지는 가족 내 역할이 있잖아,
근데 나는 매일 밥을 해서 줄 수가 없을 것 같아.
진짜, 생각만 해도 자신이 없어.”
시험 기간이라 일찍 하교한 딸과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딸 아이가 한 말이 내 뒤통수를 세게 때린다.
“너는… 그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알면서…” 어처구니가 없다.
잠시 얄미운 마음이 스치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 유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우리 유미는 밥 해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돼.
함께 밥을 하는 남자,
그 사람은 성평등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가족을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사람이고,
가부장제를 뒤로 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시대에 서 있는 사람일 거야.
엄마는 우리 유미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좋겠어.”
제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짝 웃으며
“그런 남자가 나랑 결혼할까?” 한다.
이 녀석, 생각보다 메타인지가 높아서 다행이다.
우리 집에 아들이 둘이다. ‘잘 키워야 본전이다’ 하는 생각으로
밥을 할 때마다 큰아들을 부른다.
왜 자기만 시키냐고, 누나는 왜 안 시키냐고 따져 묻는 것은 기본이요,
제 동생한테도 시키라고 난리다.
“누나는 커서 여자라는 이유로 하기 싫을 때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그래서 안 시켜. 너도 커서 네가 밥 해야지. 그래야 멋진 남자야!”
지금의 상황을 탓하기보다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외롭게 혼자 밥을 하지 않을 거다.
남편이며, 애들이며 젖 뗀 지가 언젠데
젖을 가진 이유만으로 나에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남편과 아들을 밥 하는 일에 참여시킬 생각이다.
멋진 남편, 멋진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본인들 손해다.
남편과 아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