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돌멩이
어딘가에 속해있으면서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닥쳐오는 일상을 해결해야 하는 노역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뭔가 골몰하려고 하면 과제가, 반추하려 하면 시험이, 그게 다 끝나고 나면 몰려오는 나태함이 나를 거짓말하게 만들었다. 남에게 하는 거짓말은 이해라도 되지. 나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그렇게 하면서 살았다. 백수생활을 계획하면서 또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거나 아직 대학생이고 졸업 막학기를 살고 있는 불쌍한 인간이니까. 게다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 기말고사가 열흘도 안 남은 시점이다. '일단 이것부터, 다음 주까지는 여기에 집중하자!'라고 다독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그게 맞다. 그러나 맞다고 다 좋다는 뜻은 아니듯, 2026년을 어떻게 채울지, 내 삶의 이정표에 뭐라고 쓸지 꿈속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나는 적지 않게 괴로웠다.
사주에 나무가 세 개나 있어서 그런가, 나는 유독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알고, 뭘 만들어내는 것에 끊임없는 갈증이 있다. 그럼 이루어낸 것이 많아야 정상이지만, 대부분은 끝까지 매듭짓지 못하고 진행 중으로 끝난다. 특히나 내 독일어 공부가 그랬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산 교재가 지금도 먼지가 쌓여 그대로 있다. 아 물론 알파벳은 공부했다. 그게 다인게 문제지만. 다시 돌아와서, 내 추구의 방향은 대부분 배움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이 맴돌았다. 이런! 대학원에 떨어지고 또 대학원이라니! 그래, 그렇지만 이번에는 전문대학원이 아니라 일반대학원이니 다른 거라고 해주길 바란다. 이리저리 방황하고, 떼어놓을 수 없는 21세기 최고의 비서인 gpt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시험공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날들이 지나갈 때쯤, 하나의 반짝이는 광물을 발견했다.
그 광물을 발견하고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내 길 속에 늘 함께해 왔던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곰곰이 따져보니 10대 중반부터!) 행정학을 전공하면서, 헌법 연구학회에서 활동하면서,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이 다듬어지지 않은 돌멩이와 늘 함께였다. 관성에 쫓겨 자신을 봐주지 않는 나의 곁에서 묵묵히 있었다. 이걸 깨닫고 나니 갑자기 초연해지면서, 끈끈한 여름날 같던 기분에 에어컨 바람이 불었다. '나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아.'라는 마음의 소리와 함께.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나의 꿈 혹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혹은 그래야 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나선형으로 빙빙 둘러서 가고 있다고. 샛길로도 빠져보고, 멀리 돌아도 갔다가 실패도 좌절도 원망도 전부 다 하다가 결국 되고야 마는 그 여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내가 찾은 나의 돌멩이도 나선형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p.s. 오늘은 오랜만에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