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아래 기차 위

4호선 4년 통학이라는 스펙

by 감자부침



대책 있는 백수가 되려고 하다 보니, ‘시간’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진지한 자세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루, 한 달, 한 분기를 계획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알차게 보내는 하루가 주는 기쁨이 있다. 이런 하루가 모이다 보면 한 주만 지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놓여있거나, 그새 사랑에 빠진다거나,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 쳇바퀴 돌아가듯 하는 삶 속에서도 크고 작은 일로 사람이 달라지는데, 백지에 스케치를 하는 백수의 삶은 오죽할까. 때론 계획이 방랑의 마중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가둠으로써 자유로워지기도 하니까.




시간이 아깝지 않냐는 물음을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스무 살 때였다. 나는 통학으로 왕복 2시간 반정도가 걸리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보통 그 정도 거리에 사는 친구들은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나는 4년을 내리 지하철로 통학했다. 솔직히 이 사실만 해도 내 끈기에 강력한 근거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왜 사서 고생했냐고 묻는다면... 굳이 집 밖에 나와서 살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동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나는 혼자 살기에는 외로움을 좀 탔고, 우리 집을 떠나기 싫었다. 교통비는 한 달에 약 10만 원 정도 들었지만, 밖에 나와 살면 그 몇 배가 드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이리저리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인데, 누군가의 눈에는 길에서 시간을 버리는 비경제적인 행위로 보였는가 보다. ‘헉’ 하고 놀라며 ‘힘들지 않으세요~? 시간 아까울 것 같은데..’라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나약하군.’이라고 생각했다.)

구구절절 설명을 해도 뭐 듣지도 않을 거고 그럴 필요도 없어서 그냥 괜찮다며 넘겼는데 억울하고 짜증 나긴 했다. 4호선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값싼 동정을 받는 기분에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게 되면 책을 한 권 읽기에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 매일 2시간을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사람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도 다 안다. 그래서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자고 칼을 가는 거다. 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때때로 실패하고 그냥 유튜브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기도 하지만ㅎㅎ (이 정도는 봐줘야 해.)
또, 다리운동도 할 수 있다. 이건 체력단련으로 이어지는데,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하면 여실히 느낀다. 통학을 하던 3달 동안 내 체력이 얼마나 강했었는지 말이다. 앉지 못하고 대부분 서서 가기 때문에 다리는 의도치 않게 탄탄해진다. 그리고 지하철 맨 앞칸 끝쪽에 가면 벽이 있는데, 기마자세를 하고 기대 있으면 허벅지 힘을 기를 수 있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그 자세를 유지하는 소시민이라니.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한 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착역을 3 정거장 앞두고 있을 때였다. 퇴근을 하시는 건지 너무나 지쳐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를 발견했고 우리 아빠 생각이 나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 젊음을 태워야 하는 것 같다. 친절과 다정도 체력에서 비롯된다는 걸 배운 것도 지하철 위에서다.

한편, 경기도 통학러만이 갖게 되는 능력이 있는데, 그건 곧 내릴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끔 트릭이 있기도 한데, 대부분 어느 역인지 확인하는 사람 앞에 서 있는 게 좋다. 아니면, 의자에 걸터앉아 언제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좋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내가 규칙적으로 열차를 타듯, 다른 누군가도 규칙적으로 그 시간대에 열차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내적친밀감이 높은 동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어디에서 내리실지 알고 있기 때문에 설레며 앞에 서있었다.

소위 '지하철 빌런'을 만나면 처음에는 황당해서 입만 벌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재밌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범죄에 준하는 행동을 하면 신고해야 되지만, 개찰구 앞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지나다님에도 굴하지 않고 삿대질하며 싸우는 커플이라거나, 화려한 패션으로(솔직히 희한한) 런웨이를 하시는 분들은 그날의 일기거리가 되는 거다. 4년 내내 쓰고 있는 일기장을 보면 개그코너 하나가 뚝딱 나온다. 이걸 너그러움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한 것 같고... 세상의 다양성에 적응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웃어넘길 수 있는 일상에 젖어들며, 그렇게 지하철 위에서의 삶도 나름의 빛깔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어쩌다 보니 투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시위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장점인가?' 싶지만 좋게 생각하면 들어야 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는 4호선 삼각지역 혹은 선바위 역에서 많이 열린다. 유동인구가 많은 탓이겠지. 때문에, 삼각지 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나는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아야 했다. 특히 출근 시간인 8시에서 9시 사이에 잘못 걸리면 지연된 열차 안에서 꼼짝 못 하고 갇히게 된다. 허탈하게(조금은 기쁘게) 집으로 돌아간 적도 부지기수였다. 1교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날에는 새벽같이 나와서 학교 앞에서 아침을 먹기도 했다.(원래 통학러들은 광기를 가지고 산다.) 택시 타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에 3시간 걸려서 가본 적도 있고, 정말 나도 모르게 한숨과 욕이 섞여 나오기도 했었다.


오늘 전장연 시위로 4호선 상하행선이 모두 지연되는 일이 나에게 발생했다. 등굣길에 이렇듯 피곤한 변수는 사람을 분노와 짜증에 휩싸이도록 만든다. 힘겹게 택시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교로 가면서 전장연 시위에 관해 좀 찾아보았다. 아직도 시위하는 이유를. 아니 더 정확히는 시위가 시작된 이유를. 그리고 정부의 입장 들고. 각자의 입장이 있고, 양보하지 않는 팽팽한 눈치싸움 상태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인의 불편을, 그들의 세계를 모른다. 그래서 때론 불쑥 짜증 나고, 다소 과한 요구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함부로 말을 뱉지 않으려 자기 암시를 건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함부로 재단하는 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누군가에겐, 아니 우리 모두는 각자가 서로에게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자비심을 갖고 침착하게 마주하는 태도가 좋겠다. (2022.11.7 일기)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아보겠다고 저렇게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사태의 한가운데에서는 저런 자비심은 들지 않지만 말이다.




전공수업에서 ‘접근권’, 그중에서도 ‘이동권’에 관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접근권’ 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접근권은 물리적 접근권, 정보접근권, 서비스 접근권, 절차접근권으로 분화할 수 있는데, 이 4가지 권리 실현의 근본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이동권’이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제3조에 따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이동권이라고 한다. 자유로이 나의 행동반경을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직접 움직일 물리적 가능성이 확보가 되어야 정보, 서비스, 법적, 정치적 절차 모두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라 할 수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저상버스만 다루었는데, 4호선 전장연 시위는 지하철 접근권에 대한 문제이다. 서울도 이럴진대, 지방의 대중교통 접근권은 얼마나 부실할지… 이동권은 우리 모두에게 모든 권리 행사의 근본이 되는 필수적 기본권임에도, 서울에 살지 않는다고, 출퇴근 시간대에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탑승객 2-3인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여, 승하차시에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여, 두 다리가 자유로운 사람들의 속도와 맞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암묵적으로 포기하고, 생활반경과 시간의 자유로운 활용을 억제할 까닭은 없다. 국가와 사회가 그들과의 충돌을 외면하는 것 역시 비겁하다.


요즘도 개찰구 앞에서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 운행’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여전히 합의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무리한 요구가 있고, 교통공사의 적자도 큰 부담임은 분명하다. 협상이 결렬되기도 여러 차례라는 기사 역시 보았다. 복잡한 거 다 제쳐두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계단 때문에 무력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다. 베리어프리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 국가들을 여행하거나 영상을 통해 마주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권리를 주장하는 측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들의 시민불복종은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까.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내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모든 순간에, 스쳐가는 관심을 두게 될 것 같다.






동작을 지나서 강북으로 가는 열차 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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