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의 역설
과학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전례 없이 풍요로운 시대다. 사람들은 점점 더 똑똑해져 간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여전히 취약하다. 제 아무리 지성과 이성을 겸비했다고 한들, 이제 막 태어난 인간은 첫 숨조차 자율적으로 쉬기 어렵고, 수만 시간의 보살핌 끝에 비로소 홀로 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선천적으로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닌 사람의 경우 평생을 보호와 통제의 경계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극한 행운이 따라주어, 노쇠해지기 전까지 건강히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저속노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더라도, 삶의 끝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존관계에 속하고, 우연적 순서에 따라 주체와 객체의 지위에 놓인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보살핌, 보호 혹은 통제, 손길을 ‘돌봄’이라 통칭하고, 이 돌봄의 가치를 공식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찰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고, 국가의 대응은 왜 언제나 한 발 늦고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돌봄을 공적의제로 상정하기 위해 주목받고 있는 돌봄의 헌법 명문화에 관하여 논한다.
노동을 크게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으로 나누었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한다(work)’의 이미지는 전자이고, 후자는 그 외의 노동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 외의 노동이라 함이 또한 모호하다. 재생산노동이란, 의식주 중 식(食)과 같이 일시적이고 사라질 것들을 위한 활동을 말한다. 가사노동처럼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눈치챌 수 없지만, 공백이 발생하면 기초적인 생활이 무너지는 노동이 그에 해당된다. 돌봄 역시 재생산노동에 속한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재생산노동은 그림자로 취급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돌봄은 가족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사람에 의해 수행되던 비공식적인 가치였으며, 주로 비경제활동의 영역에 편입되어 있고, 특정 성별 혹은 계층의 영역이었다.
가부장제도의 존속을 위해 성별 분업으로 여성에게 전가되었던 돌봄은 산업화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교육률의 증가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 활발히 이루어진 선진국에서는 돌봄 결핍 (care deficit)이 발생하고 있다.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주된 선택은 전 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재생산노동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른바, 전 지구적 돌봄의 연쇄 (global care chain)가 발생하면서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선진국 가정에 고용된다. 핵심은, 돌봄 노동 이 국경을 넘는 연쇄적 이주를 통해 수행되고 있지만, 결국 돌봄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개발도상국 여성들에게 돌봄 노동을 전가하는 것이고, 여성들이 돌봄을 담당한다는 성별 분업은 유지되고 강 화된다는 점이다.1 돌봄 관계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되는 힘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돌봄 제공자가 특정되면 그 특정그룹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의 악순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돌봄 책임을 수행한 사람이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그러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돌봄을 담당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불평등한 돌봄 책임으로 야기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순환한다(Joan C. Tronto). 돌봄 제공자의 조달자 역할이 특권적 일이 되고, 그러한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돌봄 책임의 의무에서 면책되나 동시에 돌봄 혜택을 누린다.2
사실상 회복불능의 저출생·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우리는 ‘취약해질 나를 돌볼 환경과 취약한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여건’에 관심을 가진지 오래다. 삶의 계획 속에 결혼 및 출산·양육을 포함하지 않는 선택을 하지만, 전통적 시각에서 자녀의 책무였던 봉양을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질병과 노후를 걱정하고 대비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평생을 보호자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보호자로 산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밥을 주고, 따듯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 학대·유기라는 범죄가 발생한다. 건강한 사람이 간병을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만, 간병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할 수 없어 빈곤에 빠지기도, 간병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원활히 돌아갈 때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책임지던 개인이 포기하는 순간 제삼자 혹은 국가에게 그 부담이 넘어간다. 무탈하게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돌봄 수혜자라는 방증인 것이니, 이보다 더 공적인 영역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고, 인간적 자유를 위해 처리해야 할 일로서의 재생산노동을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는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의 귀속으로부터 벗어나 주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Simone de Beauvoir).3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는 부진하다. 돌봄의 전지구적 연쇄와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보완과 함께 모두가 '노동자이자 돌봄인'일 수 있는 돌봄 연대책임이 가능한 사회경제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구조가 바람직한지 묻는 것이다. 돌봄은 2순위 아류의 도덕문제가 아니며, 사회에서 가장 하층민이 하는 일이 아니며,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지엽적인 문제도 아니다. 돌봄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4 - Joan C. Tronto.
1 (사)한국여성연구소 엮음, 『젠더와 사회』, 동녘, 2022, p.214.
2 돌봄부정의에의 편승(무임승차)
3 김희강·임현, 『돌봄과 공정』, 박영사, 2018, 허라금-”관계적 돌봄의 철학:’ 필요의 노동’을 넘어 ‘정 치적 행위’로” p.76.
4 Joan C. Tronto. Moral Boundaries: A Political Argument for an Ethic of Care (NewYork: Routledge, 1993), p.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