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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ator Deok Aug 26. 2023

환상동물, 미술 속을 누비다

2. 미술문화 속 거북

사찰을 방문하면 초입부, 혹은 가장 기슭하게 자리 잡은 곳에 스님들의 사리(舍利, Śarīra)가 모셔진 승탑(僧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확인된다. 스님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부도원(浮屠院)이다. 부도원에는 승탑과 함께 스님들의 행 적을 기록한 탑비(塔碑)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는데 여기서 비석의 받침돌 대부분이 거북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석을 받치는 거북은 평범한 얼굴을 하기도, 혹은  뿔과 수염,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용머리로 표현되는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 미술 곳곳에는 거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궁중회화와 민화에는 시퍼런 연기 같은 것을 뿜어내는 거북이 항상 위치하고 있고 사찰 전각 내부에 표현된 천장의 수생세계(水生世界)에는 물고기, 개구리 등과 함께 거북이 헤엄치며 연꽃 사이를 노닐고 있다. 또한, 조선후기에 제작된 사찰벽화 중에는 토끼를 태운 별주부(鼈主簿)가 표현된 수궁도(水宮圖)가 눈에 띈다. 그렇다면 우리 미술에 보이는 수많은 거북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제1화 : 거북, 세상을 짊어지다

2022년에 개봉된 영화 <한산>에서는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나대용(羅大用, 1556-1612)이 거북선(龜船)을 개량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당시 왜군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이순신과 거북선이었다. 탱크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거북선은 들이박기만 하면 배가 침몰하기 일쑤였고 이에 영화 속 왜군 장수는 거북선 도면을 탈취하기 위한 작전까지 세우게 된다. 이처럼, 거북선은 당시 단단한 등껍질을 지닌 거북의 성격을 모티프로 제작된 대표적인 돌격선이다. 이말은 즉슨, 당시 사람들에게 거북은 튼튼하고 강한 방어력을 지닌 이미지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관념은 조선시대 뿐만이 아니라 고대사회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일부 전설과 설화에서는 거북이 대지를 짊어진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디 떄문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동물  중에서 왜 하필 거북이 산과 대지를 지탱하고 짊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거북이 가진 신체적인 특성에 있다. 거북은 다른 동물들에게 없는 높고 강한 등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자신의 몸무게에 약 200배에 달하는 무게까지 견딜 수 있다는 과학적인 분석결과도 보고 된 바가 있다.

이처럼 거북이의 높고 강한 등껍질은 예로부터 하늘과 땅을 뜻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했고, 사람들의 관념 속에 뿌리 깊게 박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으로 중국 한(漢)나라의 학자 유향(劉向, 생몰미상)이 편집한 설화집인 『설원(說苑)』에는 거북을 산에 비유한 내용이 확인되며, 기원전 4세기 굴원(屈原, 기원전 343-기원전 278)의 작품으로 알려진 『초사(楚辭)』에는 산을 짊어진 거북이 언급된다. 이 가운데 『초사』 「천문(天問)」편은 여러 의문점을 하늘에게 묻는 내용인데 “산을 등에 지니고 다니는 큰 거북은 어떻게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는가? 그 거북이 바다를 떠나 육지에 오르면 어떻게 움직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산을 짊어진  거북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북은 왜 산을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열자(列子)』를 통해 알 수 있다. 『열자』는 『노자(老子)』, 『장자(莊子)』와 함께 도교를 대표하는 경전으로, 혼란스러웠던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활동한 열어구(列禦寇, 생몰미상)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도가를 대표하는 만큼 『열자』에는 신선과 도교 속 이상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살펴볼 내용은 제5권 「탕문(湯問)」편에 수록된 귀허설화(歸墟說話)이다.


발해(渤海) 동쪽으로 몇 억 만 리 인지 모르는 큰 골짜기가 있는데 바닥이 없는 계곡이다. 아래에는 밑 바닥이 없어 귀허(歸墟)라 부른다. 온 세상 강과 은하수의 물까지 모두 이곳에 흘러들지만 그 수량은 늘 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가운데 다섯 개 산이 있는데 첫째는 대여(岱輿)요, 둘째는 원교(員嶠) 이며 셋째는 방호(方壺), 넷째는 영주(瀛洲), 다섯째는 봉래(蓬萊)이다. 이 산들의 높이와 둘레가 삼 만 리 요, 정상 평원 넓이가 구 천 리이며, 산 높이와 간격이 칠 만 리로 그곳 사람들은 서로 이웃하여 살고 있다. 산 위 누각들은 모두 금과 옥으로 꾸며져 있고, 새와 짐승들은 백색이며, 수목들은 옥 구슬처럼 영롱한데 그꽃과 열매는 향기롭고 맛이 좋으며, 이를 먹은 사람은 늙거나 죽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신선의 일종으로 하루 낮 하루 저녁에 산과 산 사이를 날아 서로 왕래하는 자가 헤아릴 수 없 을 정도라고 한다. 이 다섯 산들은 그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어 늘 조류를 따라 흘러 다니니 신선들은 걱정되어 천제에게 호소했다. 천제도 산들이 서쪽으로 흘러가 그들의 거처가 없어질까 염려해 북방신 우강(禺强)에게 명하여 열다섯 마리의 큰 자라로 하여 머리를 들어 떠받치게 하였다.  큰 자라들은 세 개 조로 나뉘어 육 만년에 한 번씩 교대하고 다섯 산은 비로소 정착되었다.


귀허설화에는 대여·원교·방호·영주·봉래가 등장한다. 이 다섯 산은 흔히 ‘오악(五嶽)’이라 불리며, 전국시대에 편찬된 백과사전인『산해경(山海經)』에는 봉래·영주·방호(방장)만을 따로 구성한 ‘삼신산(三神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또한, 이 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신선의 일종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서로 왕래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열자』 속에 등장하는 오악은 평범한 산이 아닌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신산을 받치는 역할을 거북 혹은 자라가 담당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거북의 높고 강한 등껍질은 천원지방을 상징했고, 고대인들은 이와 같은 등껍질이 무거운 것을 받칠 수 있 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관념은 ‘곤륜산(崑崙山)’에 살고 있다는 여신 ‘서왕모(西王母)’를 표현한 중국미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서왕모는 도교설화에서 선인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신 중 하나인데 돌로 된 무덤이나 벽돌, 석관 뚜껑에 문양을 새긴 화상석(畵像石)을 살펴보면 서왕모가 옥좌에 앉아있고 거북은 앉아있는 서왕모를 받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서왕모의 옥좌는 곤륜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곤륜산을 지탱하는 존재가 거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산을 받치는 거북에 관한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이른 사례는 신라 최고의 엘리트이요, 6두품 출신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시문이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중국 당(唐)나라 유학길에 오른 최치원은 장성하여 주요 요직들을 두루 거쳤으며 뛰어난 문장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이랬던 그의 시문집 중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내용에 거북이 산을 받친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최치원은 구름 위 치솟은 봉우리를 거북이 머리에 얹고 있다며 이를 신산 중 하나인 봉래라고 제목에서부터 정 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최치원이 유학시절 교우했던 고운(顧雲, 생몰미상)은 그가  귀국할 당시 송별시를 선물했는데 “내 들으니 바다에 세 마리 금자라가 있는데 금자라 머리에  이고 있는 산 높고 높구나, 산 위에는 구슬과 보배와 황금으로 장식된 궁전, 산 아래에는 천 리 만 리의 큰 파도가 치네.”라고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이외에 고려후기 문인 안축(安軸, 1287-1348)의 『근재집(謹齋集)』에도 동일한 내용이 확인된다. 안축은 당시 지방 감찰관인 강원도존무사(江原道存撫使)로 파견되어 강원도 이곳저곳을 탐방하였는데 강원도 고성 ‘삼일포(三日浦)’의 경치에 매료되어 시를 지었다. 안축은 시문에서 산을 이고 있는 거북을 언급 하는데 그 산이 오악 가운데 하나인 영주산이라고 말한다.


바다 위 금자라가 머리에 영주산을 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용궁의 문으로 들어왔네. 작은 배로 붉은 글씨  있는 골짝에 정박하니, 푸른 안개가 요초 물가에서 가벼이 날리네.


고성 삼일포는 그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고려시대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여러 문인과 화원들이 방문하여 글로, 그리고 그림으로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이에 안축은 삼일포를 거북이 짊어진다는 이상세계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지탱하고 받치는 거북은 중국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에서 확인되는 보편적인  관념이다. ‘우유 휘젓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인도 ‘유해교반(乳海攪拌)’ 설화에는 질 서의 신 ‘비슈누(Viṣṇu)’가 가라앉는 ‘만다라산(Mount Mandarachala)’을 지탱하기 위해 쿠르마(kūrma)라는 거북으로 변하였고, 인도네시아 발리(Bali) 원주민 신화에서는 거대한 거북이 산과 강, 초목을 지탱하는 땅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거북만이 지닌 딱딱한 등껍질은 고 대인들에게 무엇이든지 받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으며 그 결과 거북은 산과 대지, 그 리고 세상을 짊어지고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거북의 등껍질은 과학 적으로도 증명될 만큼 매우 강한 힘을 가졌지만 껍질을 지닌 동물 중 거북이 사람들에게 선택 된 것은 느리지만 성실하게, 둔하지만 굳건하게 한곳만을 바라보는 거북의 우직한 성격도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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