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이 만드는 쓰임

열한 번째 이야기

by 이지

우리는 대체로 무언가를 채워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어 있으면 불안하고, 부족하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 하고, 더 설명하려 하고, 더 말하려 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통에 모이지만, 수레가 굴러가는 이유는 그 가운데의 빈 자리 때문이다.”

바퀴를 이루는 것은 나무지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릇도 그렇습니다. 흙으로 빚어 형태를 만들지만, 우리가 쓰는 것은 흙이 아니라 그 안에 비워 둔 자리입니다. 집 역시 벽으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과 창이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때 비로소 거처가 됩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있음은 이로움을 만들고, 없음은 쓰임을 만든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있음’으로 증명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니 가득 채운 말이 오히려 관계를 막고, 완벽히 준비된 계획이 사람을 밀어내는 순간을 자주 보게 됩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누군가는 설 자리를 잃고, 설명이 늘어날수록 삶은 숨 쉴 틈을 잃습니다.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초대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들어올 수 있도록 남겨 둔 공간, 새 일이 시작될 수 있도록 비워 둔 여백 말입니다.

신앙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믿기 위해 더 많은 말과 확신을 쌓으려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언제나 비워진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채우지 않으셨습니다. 힘으로 증명하지 않으셨고,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십자가는 무언가를 더한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리였습니다. 그 비어 있음 속으로 생명이 흘러들었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말이 많을수록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출 때 비로소 들리는 음성이 있습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과로 가득 찬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비워 둔 공간에서 관계가 시작됩니다.비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내려놓고 다른 이를 맞이하는 용기입니다.

내가 채우려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신뢰입니다. 우리는 비우고, 하나님은 그 자리에 머무십니다. 쓰임은 가득 찬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여백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립니다.


사유의 한마디

비어 있음은 부족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채움은 형태를 만들고, 비움은 삶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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