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우리는 점점 나누며 삽니다. 옳은 사람과 틀린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우리 편과 저쪽 편.
처음에는 정리하려는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이해하려고, 질서를 세우려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나눔이 사람을 가릅니다.
노자는 그 지점에서 멈춰 서서 말합니다. 강함을 알되 부드러움을 지키라. 밝음을 알되 어둠을 품으라. 영광을 알되 수치를 다스리라.
이 말은 중간만 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쪽을 모른 채 균형을 말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노자는 알되,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경험했기에 버리지 말고, 올라섰기에 낮아질 줄 알라는 말입니다. 강함만 남기면 사람을 잃고, 밝음만 남기면 관계를 잃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계곡’이라는 말을 씁니다. 계곡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이 그곳으로 모입니다. 강함을 알되 부드러움을 지키는 사람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밝음을 알되 어둠을 품는 사람은 판단하지 않고 함께 머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고. 아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누기 전에 이미 살아 있는 존재, 옳고 그름을 배우기 전에 이미 사랑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밝음과 어둠을 칼처럼 가르지 않고 하나의 밤과 낮으로 살아내는 마음.
그 자리를 노자는 ‘무극’이라 부릅니다. 경계가 사라진 자리, 판단보다 생명이 먼저 흐르는 자리.
영예와 수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영예를 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수치를 함께 다스릴 수 있을 때 사람이 깊어진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 실패를 지워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그 사람은 이미 자신을 넘어 타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큰 법은 나누지 않는다고. 쪼개서 관리하는 질서가 아니라 통째로 품는 질서. 통제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으며 흩어지게 두지 않는 힘.
신앙도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셨으나 사람이 되셨고, 영광을 아셨으나 수치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빛을 알되 어둠을 버리지 않으셨고, 강함을 알되 약함을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그 나누지 않음의 가장 깊은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인간, 거룩과 상처, 죄와 사랑이 하나로 만났습니다.
신앙은 정답을 더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나누지 않는 마음을 배워 가는 일입니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처음이란 아무것도 나누기 전의 자리입니다. 강함과 약함,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을 수 있을 때 사람은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