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임플란트에 관한
한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유튜브로 보았다.
오스템 광고 이후
임플란트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가격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결국 “누가 잘하느냐”의 문제로 돌아왔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처음엔 이 변화가 불편했다고 했다.
치료를 하는 의사가 아니라,
상품을 만들어 파는 장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제는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라,
잘하느냐,
그리고 잘하면서도
정직하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목회자라는 자리와 겹쳐 보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목회자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함께 바뀌고 있다.
한때는 카리스마 있는 설교자,
말 잘하는 지도자,
행정에 능한 사람이 각광받았다.
강단은 높았고, 말은 힘을 가졌으며,
교회는 확장의 언어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말은 넘쳐나고, 설교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묻는다.
이 말이 실제 삶을 붙들 수 있는가.
이 사람이 말한 만큼 살아내고 있는가.
권위는 더 이상 직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아 있는 시간에서 생긴다.
그래서 아마도 이제 목회자의 자질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어 보인다.
목회자가 또 하나의 ‘전문가’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상담을 잘해야 하고,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존재.
그렇게 되면 목회 역시 경쟁의 언어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하지만 정말로, 목회자는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쩌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능숙함이 아니라 지속성일지 모른다.
무언가를 해결해 주는 사람보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보다,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사람.
설명으로 설득하는 사람보다,
떠나지 않음으로 신뢰를 쌓는 사람.
현실적인 삶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은,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에 가깝다.
하루의 리듬이 깨지지 않는 것,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는 것,
사람들 앞에 서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있는 것.
그런 구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목회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전문 영역’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하나다.
직함을 내려놓고, 역할을 벗고,
그냥 한 사람으로 앉아 있어도 되는 자리.
그 자리가 있을 때, 말은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그 치과의사가 말한 ‘실력’이란
결국 오래 남아 있는 신뢰일 것이다.
단번에 증명되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
목회도 그런 것 같다.
결국 남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람 곁에 남아 있던 시간이다.
어쩌면 목회자는 더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사람일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
그 조용한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는 사람.
그 자리가,
지금 이 시대가 목회자에게 묻고 있는
가장 정직한 자리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