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사라질 때,
세상은 더 시끄러워진다

세 번째 이야기

by 이지

우리는 늘 더 똑똑해지려고 합니다. 더 앞서가려 하고, 더 잘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이상하게도 조용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은 더 피로해집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명함을 높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것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도둑이 생기지 않는다.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처음엔 이 말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처럼 들렸습니다. 지혜를 장려하지 말라니, 능력을 드러내지 말라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문제는 지혜 그 자체가 아니라 지혜를 과시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높이 세워두면 그 아래에 경쟁을 만들고, 귀하게 만들면 그것을 빼앗고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노자는 다스림의 핵심을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한다는 말은 사람을 통제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하라는 뜻처럼 들립니다. 야심은 줄이고, 삶의 근본은 튼튼히 하라는 권면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더 빠른 해답을 요구합니다. 더 나은 제도, 더 완벽한 계획, 더 강력한 리더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조차 욕망이 개입하는 순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과 좋은 제도는 때로 가장 정교한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노자가 말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흐름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선택에 가깝습니다.서두르지 않고, 앞서 나서지 않으며, 필요할 때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

무위는 게으름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힘입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듯, 사람의 마음도 회복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성인은 그 시간을 빼앗지 않습니다.

신앙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강제로 밀어붙이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 선택을 품은 채 길을 여십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모든 위험을 대신 막아줄 수 없듯, 하나님도 때로는 침묵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 침묵은 방임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여백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앞서가는 나라가 아니라 섬기는 나라입니다. 강요하는 나라가 아니라 기다리는 나라입니다.비움이 사라질 때 세상은 더 시끄러워집니다. 그러나 비움이 회복될 때, 사람은 다시 숨을 쉽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혜가 아니라, 조금 덜 나서도 괜찮다는 신뢰인지도 모릅니다.


사유의 한마디

하나님은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무위의 다스림은 비움으로 생명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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