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세상은 늘 채우라고 말합니다. 지식을 채우고, 성과를 쌓고, 관계를 넓히고, 자신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어 있는 상태를 불안해합니다.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완성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도는 텅 빈 그릇과 같아 써도 다함이 없다.”
도는 가득 찬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비어 있음 때문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릇은 비어 있을 때에만 쓰일 수 있습니다. 가득 차 있으면 아무것도 더 담을 수 없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낮아지는 것을 손해로 생각합니다. 덜 가지는 것을 실패로 여기고, 비워지는 것을 상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삶을 조금 더 살아보면 정반대의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숨이 쉬어지고, 지켜야 할 자리가 사라졌을 때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경험 말입니다.
노자는 도는 깊지만 드러나지 않고, 맑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고, 형상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어쩌면 도는 언제나 말과 제도 이전의 자리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언어도 이 지점에서 노자의 말과 만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예수님의 길은 채움의 길이 아니라 비움의 길이었습니다. 영광을 내려놓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비움은 패배가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셨기에 모든 이를 품으실 수 있었습니다. 낮아지셨기에 누구도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비움의 가장 깊은 자리입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 자리에서 오히려 생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자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붙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위한 자리를 남길 수 있고, 낮아진 사람만이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채워야 해서 지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붙잡고 있어서 자유롭지 못해진 것은 아닐까요.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텅 빈 자리에서 사랑은 머물 공간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