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번째 이야기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보면 웃습니다.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낯설어서 웃습니다. 세상이 새로운 생각을 처음 만날 때마다 그래 왔습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곧바로 행하고, 보통 사람은 듣고도 긴가민가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비웃는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비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라고.
진리는 처음부터 환영받지 않습니다. 밝은 길은 어두워 보이고, 곧은 길은 굽어 보이며, 앞으로 가는 길은 뒤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큰 덕은 낮아 보이고, 넓은 마음은 부족해 보이며, 참된 사람은 변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세상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만, 도는 안쪽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진짜는 늘 늦게 알아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고, 큰 소리는 잘 들리지 않으며,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고. 진짜 큰 것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지나칩니다. 진리는 설명보다 삶에 가깝습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진리가 있었습니다.
말로 붙잡을 수 없는 것, 정의할 수 없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 노자가 말한 이름 없는 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사는 법을 묻지만 도는 그냥 살아 보라고 말합니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묻지만 도는 지금 숨 쉬고 있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복잡하게 묻는 질문에 단순하게 답합니다. 그래서 도는 언제나 우문현답입니다.
성경도 같은 길을 말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되묻습니다. 율법에 뭐라고 적혀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이해가 아니라 걸음입니다. 진리는 설명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길은 늘 낮았습니다.높아 보이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길. 그 길을 걸으면 때때로 비웃음을 받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말합니다. 그 비웃음이야말로 도의 흔적이라고.
비웃음은 진리가 지나갈 때 나는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