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나는 제도 속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을 하고 번호를 받으며 시작했고,
서류와 절차 속에 살아왔으며,
죽음조차 신고되어야만 한다.
누구나 그렇다.
제도는 사회를 지탱하는 울타리다.
그러나 제도는 위로하지 않는다.
사망 신고를 하러 간 길에
아버지의 신분증이 회수되던 그 순간,
나는 처절하게 알았다.
한 존재가 통계로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베버가 말한 관료제의 철창,
아렌트가 본 공적 세계의 냉정함,
그것이 내 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잊지 말라 했지만,
현실의 제도는 얼굴이 아니라 기록만을 남겼다.
국가는 사망자를 사건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공동체는, 교회는...
그를 형제와 자매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교회조차 제도의 언어를 답습한다.
장례는 유족의 슬픔을 품기보다
절차와 일정으로만 채워지고,
교육은 아이들을 고유한 영혼이 아니라
성적과 등수로만 바라보며,
돌봄은 관계의 온기보다
프로그램과 예산으로만 계산된다.
우리는 이미 제도의 무심함을 닮아가고 있다.
숫자와 통계의 언어가 교회의 입술에도 서서히 배어든다.
그래서 이름은 지워지고, 관계는 얕아지고, 존엄은 흐려진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제도가 이름을 지우는 시대에,
공동체는 이름을 불러야 한다.
제도가 흔적을 회수하는 순간에도,
사람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아직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존엄이고,
인간다움의 미래다.
제도는 차갑다.
그 차가움을 넘어서는 것은,
사람을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 고유성을 잊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제도가 채울 수 없는 인간다움의 길이다.
신이 창조한 인간다움의 길이다.
그리고 그 부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시 살려낼 것이다.
제도가 인간을 통계로 묶어 세운다면,
우리는 이름을 불러 서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