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이야기
우리는 늘 교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심지어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런 교환이 있습니다.
경제학은 이것을 등가교환이라 부릅니다. 가치가 같은 것을 서로 바꾼다는 말. 하지만 삶에서 그런 교환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누군가 더 가지려 하고 누군가는 그만큼 잃습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 반복 끝에 삶은 경쟁이 되고 경쟁은 전쟁이 됩니다.
우리는 가진 만큼 행복하다고 배워왔습니다. 더 쌓으면 안전해지고 더 얻으면 자유로워질 거라 믿었습니다.그런데 이상합니다. 채울수록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고 비워질수록 불안은 더 커집니다.
노자는 아주 오래전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름과 몸 중에 무엇이 더 가까운가. 재산과 생명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병이 되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
이름은 밖에서 붙여준 것이고 재산은 잠시 맡아둔 것입니다. 그러나 몸, 곧 생명은 내가 살아 있는 자리 그 자체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무엇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고. 많이 쌓아둘수록 잃을 것도 두꺼워진다고. 그래서 오래 가는 삶의 조건은 더 가지는 힘이 아니라 멈출 줄 아는 마음이라고. 만족을 알면 부끄러움이 없고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오래 간다고.
요즘 우리는 ‘더’라는 단어에 너무 익숙합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올라가야 하고 더 증명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삶은 직선이 아닙니다. 숨을 들이마셨다면 내쉬어야 하고 달렸다면 멈춰야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붙잡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잃고, 내어주는 사람은 다시 찾게 된다고.
베드로는 잃지 않으려 했고 예수님은 멈출 줄 아셨습니다.
사람의 계산은 손익을 따지지만 하나님의 길은 생명을 봅니다. 십자가는 가장 큰 실패처럼 보였지만 가장 오래 남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붙잡지 않았기에 잃지 않았고 멈췄기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능력이 아니라 멈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가지려다 지쳐버린 마음, 더 증명하려다 흔들린 삶. 그 앞에서 노자는 조용히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래갈 수 있다.
멈춘다는 것은 더 이상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는 일입니다. 비움 속에서 삶은 다시 숨 쉬고 그렇게 오래 가는 생명은 하나님이 머무는 자리에서 조용히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