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십 년도 더 전 일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 고향에서 집까지 걸어가기가 싫어져 택시를 탔다. 택시 미터기가 켜졌고 차는 출발했다. 그런데 기본요금이 천 원 이상 올라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기본 요즘이 많이 올랐네요."
택시기사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더 올려줄까?"
당시 상당히 기분 나빴었는데 돌아보며 생각하니 택시 기사분과 나의 '언어'는 달랐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택시를 타는 내 입장과 계속 택시를 몰면서 생계를 지켜온 기사분의 입장과는 그 기저에 깔린 '언어'가 다르다.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를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제한된 '언어'로서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해주길 바란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두 원리가 실제로 마주치는 곳에서 각자는 타자를 바보니 이단자니 하고 선언한다. 나는 내가 타자와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왜 그 타자에게 근거들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어디까지 가겠는가? 근거들의 끝에는 결국 설득이 있을 뿐이다."<확실성에 관하여>
원리는 간단하지만, 이 설득이 과연 가능할까?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말한다.
"우리는 마찰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적인 조건인 미끄러운 얼음에 올라섰지만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걷고 싶다. 따라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땅으로 돌아가라"<철학적 탐구>
갈등은 아마도 내일의 타자 이해를 향해 있다고 믿는다면, 그래도 오늘부터 좀 나아지지 않을까...
어쩌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