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요즘 인공지능은 일상의 많은 것을 대신합니다. 정보를 찾고, 요약하고, 글을 쓰고, 코드를 만들고, 그림과 영상까지 몇 초 만에 만들어냅니다. 한때는 많이 알고 빨리 적용하는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의 속도와 양에서 인간은 기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태도’를 말합니다. 경청, 겸손, 온유, 그리고 기다림. 지식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사람의 품성은 오히려 희소해집니다.
노자는 이미 오래전에 이 전환을 말했습니다. 배움의 끝은 더함이 아니라 덜어냄이라고.
노자는 말합니다. "배우면 날마다 더하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덜어낸다. 덜고 또 덜어 마침내 무위에 이른다.무위이되 이루지 못함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억지로 쥐고 흔들려는 마음을 놓아버리는 상태입니다. 지식은 쌓일수록 무거워지지만, 도는 덜어낼수록 맑아집니다. 커지는 길이 아니라 통로가 넓어지는 길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전환은 ‘지식의 권위’를 낮추고 ‘태도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정확도와 속도는 기계가 앞서지만, 경청과 공감, 책임과 절제는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노자가 말한 ‘날마다 더함’에서 ‘날마다 덜어냄’으로의 이동은 성장의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깊어짐의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채워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불필요한 설명, 과도한 논증, 나를 증명하려는 힘을 덜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타자가 통과할 여백이 생깁니다.
‘무위이되 이루지 못함이 없다’는 말은 의지를 없애라는 뜻이 아니라, 의지를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바람을 붙잡지 않지만 돛을 조정하듯, 도는 하지 않음으로 되게 합니다.
성경도 같은 길을 말합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3만 명에서 300명으로 줄어듭니다. 전술을 보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랑을 덜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숫자를 줄여 하나님의 하심이 보이게 하신 겁니다.
바울은 능력을 증명하는 목록 대신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온유, 절제. 교회가
‘우리가 더 했다’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은혜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성과를 숨기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공지능이 지식을 더해줄수록, 우리는 마음을 덜어내야 합니다. 조급함을 덜고, 독선을 덜고, “내가 하겠다”는 힘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하심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더해서 빛나지 않습니다. 덜어서 투명해집니다. 내가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