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한 프로그램을 잠깐 보다가 중간에 멈췄다. 장애인끼리 소개팅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목도 따뜻했다. '내 마음이 몽글몽글'
처음에는 그저 “이건 뭐지?”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삶이나 연애를 보여주는 예능이야 흔하니까. 그런데 패널의 한 마디가 귀에 남았다.
“보기 좋네요.”
아마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좋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걸렸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 속에는 어떤 위치가 들어 있는 걸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으로.
무슨 말이냐면, “보기 좋다”는 말은 결국 관람자의 감정을 말하는 표현이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좋은 장면”이 되는 순간이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프로그램을 끄고 유튜브로 사람들 반응이 보고 싶어, 예고편의 댓글들을 조금 읽어 보았다. 대부분은 따뜻한 반응이었다.
“보기 좋다.”
“감동이다.”
“몽글몽글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조금 다른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지적장애 가족을 둔 사람이 남긴 댓글이었다. 사랑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책임과 삶의 무게를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 댓글을 읽고 나니 내가 느낀 불편함이 조금 또렷해졌다. 혹시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빈곤 포르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의 삶의 어려움이나 무게가 시청자의 감동을 위해 소비되는 구조 말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겠다.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겠다. 장애인의 삶을 숨기지 않고 연애와 관계를 맺는 한 인간의 삶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니까. 그래서 그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문제는 프로그램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보며 쉽게 말한다.
“보기 좋다.”
“따뜻하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삶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래서 쉽게 결론을 맺지 못하겠다. 다만 이런 질문 하나만 남는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라는.
따뜻함과 소비 사이에서 우리는 늘 조심스럽게 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