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절주절

by 이지

어느 날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타심을 말하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형태는 달라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인간의 이타심은 사실 정교한 이기심이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마음이 가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나에게 의미가 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희생처럼 보이는 선택조차 결국은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사람에게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사랑을 ‘선호의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많은 관계는 사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연인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관계이지만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내가 좋아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후자에 가까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과 연결된 것을 사랑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것, 나의 삶을 조금 더 넓혀 주는 것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독교 신앙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사랑이 완전히 순수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굽어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에는 언제나 기대와 욕망과 계산이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말은 사랑의 출발점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완벽한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을 경험하면서 사랑을 배워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보통 이렇게 시작됩니다.
좋아서 사랑한다.
하지만 복음이 말하는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한다.

사람의 사랑은 대개 필요에서 시작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찾고, 외롭기 때문에 관계를 만들고, 기쁨을 얻기 위해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충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조금 이상한 사건이 됩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가치가 생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조금 어설픕니다. 완전히 순수하지도 않고, 완전히 계산적이지도 않습니다. 기대와 진심이 섞여 있고, 욕망과 헌신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문득, 자기 안에 섞여 있는 사랑을 알아차리는 순간입니다.
“아, 나도 결국 나 중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구나.”

이 깨달음은 사람을 냉소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 이기적이라고 말하며 관계를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이 깨달음이 또 다른 질문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질문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결국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하기보다,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사랑을 배워 가는 사람.

어쩌면 인간의 사랑은 늘 불완전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계속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