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세 번째 이야기
어릴 적 들었던 김국환 씨의 노래 〈타타타〉가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살고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면서도 묘하게 평화로운 여운이 남는 곡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바탕에는 불교의 개념 타타타(tathatā), 곧 ‘있는 그대로의 그러함’이 있습니다. 좋은 일도 지나가고 나쁜 일도 지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그저 지금 이 삶이라는 통찰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늘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눈에 띄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도는 넓고 평평하지만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노자가 말한 ‘큰 도(大道)’는 누군가 만든 길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열려 있는 삶의 길입니다. 평평하고 넓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걷지 않습니다. 대신 지름길을 찾습니다. 더 빨리 올라가는 길, 더 쉽게 성공하는 길, 과정을 건너뛰는 길.
노자는 그 결과를 아주 냉정하게 묘사합니다. 조정은 텅 비고, 밭은 잡초로 뒤덮이고, 곳간은 비어 있는데, 사람들은 비단옷을 입고 번쩍이는 칼을 차고 넘치는 부를 자랑한다고요.
그리고 한 마디로 말합니다.
“이것은 도둑의 자랑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삶. 노자가 보기에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약탈이었습니다.
우리는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빨리’는 능력이고 ‘느림’은 무능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자라지 않습니다. 지름길은 성취를 앞당길 수 있지만 사람을 깊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밭은 황폐하고 곳간은 비어 있는데 겉모습만 화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강한 칼을 차고 더 많은 것을 과시합니다. 허기를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노자가 말한 ‘도둑의 자랑’은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의 철학은 결국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말보다 삶입니다.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철학 강단을 떠나 농부나 교사로 살았다고 합니다. 철학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말한 ‘큰 도’도 같은 길입니다. 지름길은 말로 닦지만 큰 도는 걸음으로 만들어집니다. 말은 짧지만 삶은 길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지름길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빨리 믿고 빨리 응답받고 빨리 복 받는 길. 그러나 하나님은 지름길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야 했고 다윗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장 멀고 고된 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빠른 응답보다 견고한 걸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삶을 걷는 일입니다. 예배당에서 배운 말을 세상에서 살아내는 일 말입니다.
노자의 큰 도와 복음의 길이 바로 이 자리에서 만납니다.
지름길은 빨리 도착하지만 금세 잃어버립니다. 큰 길은 느리게 도착하지만 끝까지 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빨리 걷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바르게 걷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