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만 남기려다
아무도 남지 않는 세상

예순두 번째 이야기

by 이지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만듭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비난은 빠르고 판단은 쉽고 사람을 버리는 일은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이 보이면 품어 주기보다 증거처럼 들이밀며 정죄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기준을 만들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을 그 기준 밖으로 밀어냅니다.

노자는 이 장면을 오래전에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는 선한 사람의 보배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보호가 된다.”

노자의 말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보통 선한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은 인정하고 나쁜 사람은 버립니다. 하지만 노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도는 선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의지할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완전한 사람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노자는 도를 선과 악의 경계 너머에서 봅니다. 도는 옳은 사람만 품지 않습니다. 그른 사람도 함께 품습니다.그래서 도는 판단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옳음’이 강해졌습니다. 정의는 많아졌지만 자비는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판단하는 데 점점 더 능숙해졌습니다. 그 결과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옳은 사람만 남기려 했는데 결국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노자는 그 상황을 향해 조용히 묻습니다.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이 노자의 통찰을 은혜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한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래서 복음은 정죄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덮음으로 시작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

사랑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쉽게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버린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시 덮으십니다. 그 덮음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진짜 진리는 차갑지 않습니다. 진짜 진리는 세상을 정죄하기보다 세상을 품습니다.


사유의 한마디

도는 옳은 사람만의 길이 아닙니다. 넘어진 사람에게도 열려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도는 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버린 사람을 다시 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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