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다섯 번째 이야기
요즘 우리를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해졌습니다. 정보는 넘치고 분석은 정교해졌고 논리는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거기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더 차가워지고 더 피곤해졌습니다.
한 택시 기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꾸짖는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이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이기려는 사람은 많고 책임지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가르치려는 사람은 넘치고 배우려는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다들 똑똑한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 혼탁해집니다.
노자는 중국 춘추전국의 역사를 보며 이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이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은 꽤 불편합니다. 우리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좋아질 거라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노자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꾀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의 적이 된다.”
왜 그럴까요?
지식이 많아지면 사람은 정직해지지 않고 교묘해집니다. 진실해지지 않고 설득하려 합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기려 합니다. 그래서 말은 많아지고 관계는 사라집니다.
노자가 말한 ‘어리석음’은 무지가 아닙니다. 꾸밈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답을 몰라도 괜찮고 남보다 늦어도 괜찮고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입니다. 그 단순함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정직해집니다.
지식은 사람을 앞서게 만들지만 덕은 사람을 남게 합니다. 지식은 논쟁을 만들고 덕은 관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밝게 하지 말고 어리석게 하라.”
이건 사람을 무지하게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교묘해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길을 걸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지배를 능력이라 말하지만 예수님은 섬김을 능력이라 하셨습니다. 그분은 말로 이기지 않으셨습니다.조용히 책임지셨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힘은 더 강해졌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닙니다. 더 많은 정보도 아닙니다. 더 적은 교묘함입니다. 조금 덜 똑똑해도 조금 덜 계산해도 조금 더 정직하고 조금 더 책임지는 사람. 그 사람이 세상을 지탱합니다.
지혜는 빛나지만 덕은 남습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보다 꾸밈없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