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강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모든 물이 그리로 모입니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깊음으로 세상을 품습니다.
반면에 우리 사는 세상은 반대로 움직입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앞서 가려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끊임없이 증명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올라간 사람일수록 오래 가지 못합니다. 라퐁텐의 우화에 나오는 늑대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양을 잡아먹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찾았습니다. 아니, 이유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강한 사람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가져옵니다. 이미 욕망을 품고 정의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시끄러워집니다. 말은 많아지고 설명은 늘어나고 정당화는 정교해집니다.
노자는 그 반대의 길을 말합니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스스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건 겸손의 미덕이 아닙니다. 존재의 구조입니다. 물은 싸우지 않습니다.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저 아래로 흐릅니다. 그래서 모입니다. 그래서 살립니다. 그래서 남습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위에 서고 싶으면 먼저 낮아져라.”
이건 역설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밀어냅니다. 그래서 혼자가 됩니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은 사람을 품습니다. 그래서 모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길을 그대로 사셨습니다. 사람 위에 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십자가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낮아짐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힘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말로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진짜 힘은 위로 향하지 않습니다. 아래로 흐릅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다투지 않으니 아무도 그와 다툴 수 없다.”
이건 지는 법이 아니라 이기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계속 위로 가려 합니다. 그래서 지칩니다. 이제는 흐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조금 낮아지고 조금 물러나고 조금 덜 주장하는 것. 그 자리에서 사람이 살아납니다. 관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남습니다.
강은 낮아지기 때문에 모입니다. 사람도 낮아질 때 살립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리를 통해 일하시지 않습니다.항상 낮은 자리로 흘러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