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어른이다.
봄에 만난 우리, 어느새 무더위가 줄줄 흐르는 창을 연다.
"얘들아 많이 덥지? 이제 집에서 선풍기 켜니?"
"저희집에선 잘때엔 절대 안 켜요. 사촌형이 선풍기 켜고 자서 죽었대요."
정적이 몇초 흐르고 다시 덧붙이는 D.
" 아 근데 나중에 보니까 선풍기 때문에 죽은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하늘나라에 갔다고 하네요."
이럴때 느낀다. 애는 애다.
키가 170이 넘건 몸무게가 70이 넘건 애는 아이. 1학년이나 하는 TMI 남발을 아직까지 하고 있네 싶다.
"아이구, 그래? 선풍기 켜면 위험하다고 어른들이 그러시든? 그랬구나."
D 말을 뭉개며 다른 학생에게 말을 건네보고자 하는데 대각선 누군가가 그런다.
"야, 그런걸 왜 말하냐?"
사회성 좋은 Y.
우리반 인싸. 우리반은 끝반인데 1반에도 친구를 만든 대단한 전학생이다. 벼룩시장 활동을 할때엔 별거 없어보이는 물건을 왕창 들고왔길래 이거 어디 팔리겠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몇분만에 다른 교실을 돌며 완판신화를 쓴 Y. 물어보니 가자마자 "너 세븐틴 좋아해?"라고 서두를 던졌다고.
체육시간에 무료로 할당되는 지역 축구경기 티켓을 꼭 여러장 챙겨서 큰 소리로 이번주말에 축구보러 갈 사람? 외친다. 이 지역의 환경에 대해서 배운 날 쉬는시간에 아파트 앞 게임회사나 과천정부청사 직접 보러 갈래? 샘이 아까 청와대 개방했다는데 거기 지하철타고 같이 갈래? 물으러 다니는 학생.
가만히 관찰하다보면 사회성이라는 역량은 타인과 상호작용하게 하고 경험을 쌓게하여 결국 그 주체를 성장으로 이끄는 동력이구나. 이건 참 대단한 역량이다싶다.
그런 Y가 D에게 일침을 놓은 것이다. 그런걸 왜 말하냐고.
교사보다는 같은 학생이 알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뭉개려던 이야기를 다시 탁탁 털어 가로로 쫙 펼쳤다. Y는 왜 그런걸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보라고.
"음 가족 이야기를 나쁘게 할 필요가 없고요. 내 가족 사생활은 내가 지켜야 하는거니까요. 그리고 소문날 수도 있고요. 또 무엇보다 지금 관련도 없는 이야기에다가 남들도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말은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이거지. 방과후 열사병 주의, 장마철 안전지도를 하려고 했던 그날의 하교지도는 '할 필요 없는 말'에 대한 교육으로 끝났다. D가 집에 가는 스쿨버스 안에서 과속방지턱을 쿵 넘기 전까지만이라도 생각에 잠겨보기를. 텅 빈 교실을 청소 하며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오래전 해버린 '할 필요 없는 말'들에 대해서.
어른스러운 사람과 아이같은 사람 두 부류가 무자르듯 딱 갈라 따로 있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적당히 어른스럽고 때때로 아이스럽다. 아이가 어른스럽거나 아이스러운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 교실에서처럼 어른스러운 아이가 가르치고, 그럼으로써 아이같은 아이는 어서 크면 되니까. 하지만 어른인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어른스러울 때와 아이스러울 때를 구분해야만 주변 어른들이 그를 수용해 주는 것이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하는 것, 이걸 구분하는 것이 그 처음 발판이다. 여기에서부터 꽤 가파른 '어른 되는 계단'을 비로소 올라갈 수 있는데, 이걸 잘 하지 못하면 이미 위에 앉아 있는 이들이 손을 잡아주지를 않기에 남들 다 걸어올라가는 계단을 네발로 엉거주춤 기어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고되고 외로워 계단오르기를 포기하고 결국은 저 아래의 아이들이 노는 평지를 그리워하는 어른이 되겠지? '나는 아이다운거야.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하면서. 추해진다.
익명에 기대어 남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이야기를 징징댄 푸른 겨울이 길었다. 면대면 공간에서도 애정과 헌신에도 기대어 '알아서 나를 좀 받아주소' 응석 부리기도 했다. 응석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가시돋친 말들도 잦았다. '안 할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해줄까?' 하는 치기 어린 도발도 종종했다.
숙인 허리 덕에 피가 몰린 것이려나. 얼굴이 화끈해진다. 색색깔의 종이 조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빗자루를 툴툴 털어낸다. '이제'를 여러번 입속으로 되내인다.
이제 나는 어른스러운 어른이야. 할 필요 없는 말이 이제 뭔지 알지. 정말 이제는 다른 어른들의 손을 잡고 걸어 올라가보자. 언젠가는 뒤이어 오는 어린 어른들의 손을 이제는 잡아주는 이도 되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