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500원짜리
출근길부터 비가 무지하게 내렸다. 이런 날씨에 그곳에 가면 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 오 운치 있는걸?' 하고 느낄 수 있다. 그곳은 일단 수원에서 드립이 제일 맛있는 브랜드이고, 특히나 이 지점은 작은 한옥을 개조하여 작은 중정이 있기에 처마 밑에서 토닥토닥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지영 커피로스터리 남수문점!
'그래. 오늘 s랑 여길 가자.'
남자친구 직장 옆 공터에 차를 대고 퇴근을 기다렸다. 비포장된 공터라 움푹 파인 곳마다 물웅덩이가 생겨있었고 아무리 안 좋은 차일지라도 흙탕물이 차 겉면에 도포되는 감각은 불쾌하다. '비 진짜 극혐이다.' 하는데 수업 전에 와있던 당근 메시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비오는 날 나가기 제일 싫어하는데 어쩌죠. 운동화 젖는걸 싫어해서요."
동료장학이 있는 날이라 이전에는 초긴장, 이후에는 오늘 할 몫을 다했으니 확 풀어지자 였다. 메시지가 온것을 이래저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금 1돈같은 것을 노리고 돌린 은행 어플 룰렛 이벤트에서 받은 작은 기프티콘들을 최근에 싹 모아 당근마켓에 헐값에 올려두었다. 그 중에 제일 싼게 cu 레쓰비 캔커피였는데 500원으로 올려놓고선 그때도 내가 이 몇백원을 왜 올리고 있냐며 헛웃음을 쳤었다. 완전히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그저께 연락이 온것이다. 본인이 사고 싶은데 내일 입금하게 예약할 수 있냐며.
네 그러세요 하고서 그 500원짜리 약속은 점심 먹고 아이들과 웃고 공개수업 지도안 고치고 회의하고 장보며 잊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저 메시지가 와 있던 것이다.
당근마켓 채팅 어플에 접속하는데 밖에서 차를 두드렸다. 조수석으로 바꿔앉았다. 비는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고 물웅덩이들을 앞차가 밟고 지나갈때마다 우리차 앞 유리는 등목을 했다.
비 진짜 싫다. 싫다 하면서 문득 궁금증이 일어 댓글에서 그 사람을 탭, 판매물건란에 들어가보았다. 다 망가진 아이스크림과 호떡 즉석판매리어카가 70만원에 올려져있었다.
"호떡 만드는 기계 얼마 정도에 살것 같아?"
" 10만원?"
"누가 70에 올려놨다?"
"그만큼 못 받을텐데. 감가상각 엄청 되었을텐데 모르나보다."
그 순간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전 대화도 이상하기도 하지.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데 왜 레쓰비값 500원을 입금하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걸까? 휴대폰으로 하는 계좌이체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2022년에는 없을거라고 여긴 내가 생각이 짧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값싼 동정을 하는 건 아닐지 몇 초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연민이 아니라 기꺼이 선물임이었기에 실행했다.
' 비 오는 날, 밖에 나가기 전에 얼른 커피 드려야겠다. 내리는 비가 나보다 더 불편할 수도 있겠어.'
이런, 분명 선물이었는데 내가 받은 것이 더 컸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큰 감사 인사를 이리도 쉽게 받을 수 있는거였나? 채팅을 얼른 보내고나서 ' 안 드렸으면 두고두고 후회할뻔 했어.'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차는 북수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앞유리를 때리는 톡톡거리는 빗소리가 ' 너 오랜만에 좀 잘했어, 순발력도 좋고!"라고 말해주는 듯도 했다.
정지영로스터리에 도착해 커피를 주문했다. 여전히 여긴 정말 맛있는 곳. 그 분의 500원짜리 레쓰비커피도 이렇게 맛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호떡 장사기계도 빨리 팔리시면 더 좋겠다. 오랜만에 낯선 사람의 행운과 여유를 진심을 다해 바라본다.
새 다짐을 새 마음에 담아본다. 작은 행운과 우연을 더 쉽게, 더 자주 베푸는 이웃이 되어야지.
내일 학교에 가면 아이들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빨간 우산을 둘셋씩 나눠 쓰고 절반씩 젖은 책가방들이 둥둥 떠오른다.아마 아이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