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남은 동료들
나는 스승복이 많댄다.
웬 샤머니즘이냐 싶겠지만 사주가 그렇다는데? 학년 초, 새 교실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늘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딸은 역시 선생님 운이 좋아." 사실 지나고 보니 요즘 시선으로는 '선생님'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 부모님도 아셨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한 해동안 매일같이 만나야 하는 사람을 존경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딸이 학교에서 해야하는 일들을 따박 따박 잘 해내는, 나아가 (그 이상한) 선생님(이라할지라도)께 예쁨 받는 학생이길 바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초,중,고, 대학교 네 번의 학교를 다녔고 부모님의 희망대로 성실히 배웠다. 어른을 만나면 배꼽에 손을 얹고 인사한다는 것, 걸레를 빨 때엔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시켜 주먹을 위로 한 엑스자를 만든 뒤, 다시 손바닥을 위로 한 십일자로 만들면 된다는것, 수열의 극한, 일본어로 식사 전엔 이따다끼마스, 정철의 관동별곡, 학습모형과 교육과정 총론까지.
어떤 것은 앞글자만 따서 달달 익혔고, 또 다른 것은 이전 것들과 주르륵 연결되는 기쁨 속에 이해했다. 수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착실히, 가끔은 고통스럽게 배운 내용들과 십여년을 함께 통과하며 컸다. 단계들을 넘어가며 대부분은 휘발되었지만 그 중 몇몇은 장기기억으로 남아 그 주인에게 여러번 보은했다. 과외로 쏠쏠한 용돈을 벌었고 임용고시 각론을 공부할 때도 가끔씩 수월했다.
초,중,고,대 네개의 학교를 거쳐 사회인이 되었고 다시 학교에 갔다. 이번에는 일하러 갔다.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그 다섯번째 학교에서 드디어 나의 '스승 복'을 실감했다. 첫 번째는 승 선생님이었다. 승은 올바른 사랑 속에 잘 배운 사람이 따뜻한 유머감각을 겸비하면 얼마나 당당해 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