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스텝2. 주니어 ∙ 미드레벨디자이너
주니어 시절, 나는 ‘야무진 디자이너’처럼 보이고 싶었다.
특히 전화.
이게 제일 무서웠다.
상대방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그 몇 초 안에 ‘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체에게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래서 늘 메모장을 켰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대본을 썼다.
A안, B안, 예상 질문, 예상 답변까지.
심지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까지 시뮬레이션.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2-3분 속으로 리허설까지 했다.
(별걸다)
말이 꼬이면? 다시!
톤이 어색하면? 다시!
그땐 그게 ‘일 잘하는 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척’이라기보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었다.
가식 같고, 연기 같고, 어쩌면 좀 유난스러워 보였을지도.
근데 이상하게? 그게 도움이 됐다.
리허설을 거듭하면서 말투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핵심을 정리하는 힘도 생겼다.
처음엔 ‘척’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 것’이 되어버린 거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통화 전에 키워드 몇 개만 메모하면,
나머지는 내가 바로 조립해서 말할 수 있었다.
‘척’은 사라지고, 대신 몸에 밴 습관이 남았다.
그래서 알게 됐다.
‘일 잘하는 척’은 가짜가 아니다.
준비가 부족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임시 무대다.
누군가는 가식이라 말하겠지만,
나한텐 성장의 예행연습이었다.
그러니까 가끔은, 척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