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스텝2. 주니어 ∙ 미드레벨디자이너
에이전시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늘 든든한 사수가 있었다.
막히면 물어볼 사람, 잘했는지 확인해줄 사람.
주니어일 때 그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른다.
그런데 인하우스로 이직하고,
또 LX(국토정보공사)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약 4,600명 규모의 조직에 디자이너는
정말 나 혼자.
존재감은 커졌지만,
혼자서 조직 전체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책임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전국 지사에서 각자 만든 홍보물은 제각각이었다.
리플렛, 전단지, 포스터마다 톤앤매너가 다 달랐다.
어느 날도 그랬다.
한 지사에서 온 포스터를 보고 깜짝.
그야말로 아이고 깜짝이야.
폰트는 제멋대로, 컬러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조합.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홍보부 OOO입니다.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맞춰야 해서요.”
“아이덴티티~ 그게 뭔데에~ 포스터는 그냥 우리끼리 잘했는데에~”
“… 아, 그러니까 전체 조직 톤에 맞추는 거예요. 이번에 한 번 맞춰보시죠?”
“아이고~ 알겠심니데~ 한번 해봐야지에~”
여러번의 메신저와 전화 끝에, 드디어 톤이 맞춰졌다.
그리고 마무리하며 지사 담당자가 한 마디.
“아이고 고생하셨슴니데~ 나중에 지사 한번 내려오셔서 막걸리 한잔 같이 하이소~”
(원래 LX 지사분들이 인심좋기로 유명하다^^)
혼자서도 톤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웃으며 정리할 수 있을 때,
‘아, 이게 진짜 사수 없이 성장하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사수가 없는 상황은 이렇게 조직 구조상 혼자일 때도 있고,
있던 사수가 갑자기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작은 회사라면 더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때부터는 누군가가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다는 것.
잘못 가고 있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때 필요한 건 ‘멘토의 부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검증하고 성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작업이 끝나면 무조건 3가지 기준으로 검증했다.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가?
디자인 완성도가 일정한가?
사용자 관점에서 불편하지 않은가?
처음엔 오래 걸리지만, 반복할수록 판단이 빨라진다.
온라인엔 배울 수 있는 ‘사수’가 많다.
노트폴리오, 비핸스에서 좋은 작업을 보고 단순히 “예쁘다”가 아니라,
컬러,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피, 일러스트를 쪼개서 분석했다.
예전 작업물을 꺼내 ‘지금 기준’으로 다시 만들어봤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보이고, 개선점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는 훈련은 실무 대응력을 크게 키워준다.
혼자 판단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기획자, 개발자, 마케팅 동료에게 시안을 보여줬다.
비전문가라도 “사용자 입장”에서 좋은 피드백을 줄 수 있다.
사수가 없으면 새로운 트렌드를 알려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매일 아침 커피 타임엔 비핸스, 디자인정글을 열어봤다.
매주 한 번은 신기술을 탐색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새로운 툴을 실습했다.
솔직히, 사수가 없는 상황은 시련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성장을 멈추게 해선 안 된다.
조금 진부한 말이지만, 눈앞의 돌은 결국 디딤돌이 된다.
그 과정에서 문제해결력과 자기주도성이 생기고, 훨씬 단단한 디자이너가 된다.
누군가의 지시나 개입 없이도!
방향을 잡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디자이너야말로,
진짜 모두가 꿈꾸는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