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 언니가 웬일로 집에 있는 날이었다. 하교 후 셋방 쪽문을 열고 들어오니 언니가 양파를 한 바구니 들고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처럼 쉬는 날에 언니는 항상 혼자서 소풍을 다녔다. 그 소풍도 아니면 시골집에 다녀오곤 했기에 외출하지 않고 있는 언니를 보니 더 반가웠다.
"언니, 오늘 어데 안 갔어?"
"욱아, 이거 집에서 갖고 온 양파데이. 저장했던 긴데 볶아서 함 무봐라. 참 달다."
"응? 볶아서? 어떻게 하는 건데?"
"채 썰어가 기름 두르고 볶다가 간장 넣고 쪼매 더 볶으면 된다."
"아, 맞나? 언니야 잘 묵을게. 고맙데이."
오늘 저녁밥상엔 양파볶음이 올라가겠네 싶어 새로운 반찬에 흥미가 생겼다. 그동안 양파는 된장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거나 아버지가 술을 찾으실 때 그 술상에 안주로 올라가던 톡 쏘는 매운맛의 생양파가 내가 아는 양파였는데...... 새로웠다. 아, 할머니가 담가 둔 양파장아찌도 있었구나. 어쨌든 양파볶음은 내가 처음 접해본 반찬이었다. 궁금해서 조금 일찍 저녁상 준비를 했다. 양파껍질을 벗기면서 매운 향이 올라와 눈가가 따가워지기 시작해서 얼른 씻고 채를 썬 뒤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고 휘리릭 볶기 시작했을 때였다. 뭔가 달큼한 향이 올라오면서 후각을 자극했다. 양파에서 이런 향이 났었나 싶을 정도였다. 양조간장을 부으려다 조선간장과 조금 섞어 반 숟가락을 휘리릭 뿌려 넣었더니 약간의 타는 듯한 불향과 같이 어우러져서 더 달큼한 향이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맛있고 근사한 반찬이 되어 밥상에 놓인 양파볶음을 동생들과 먹으며 감탄할 때였다.
"욱이 밥 묵나? 어때? 볶아서 먹어 보이 괘안채?"
"응, 언니, 이거 진짜 맛나네. 고맙데이~ 앞으로 요래 해가 묵으면 반찬도 되고 좋네 좋아!"
"욱아, 밥 묵고 치우고 나면 언니야 방에 놀러 온나"
"어, 언니야 알겠데이. 있다가 갈게."
공장은 그만두었고 이번 주 토요일에 이사를 간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골로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 명옥 언니와는 거의 2년 여정도를 같이 지냈다. 집주인이 방 2개를 우리 방과 언니 방으로 나눠서 세를 주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 셋방이지 그냥 딱 붙어 있는 옆방이었다. 알게 모르게 언니는 나에게 한 번씩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들을 해주었기에 언니가 이 집에서 나간다고 하니 벌써부터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다. 난 그동안 받기만 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사 가면 앞으로 못 볼 테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면서 자신의 물건들을 몇 가지 갖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언니는 말했다. 어떤 일이든 겪을 땐 기쁘고 즐겁고 아프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 좋고 나쁨 들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너무 좋아하고 너무 아파하면 안 된다고...... 난 그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언니의 그 말은 내 마음과 머리에 담겨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늘 같은 길이의 단발머리를 하고 다녔던 내게 한 번씩 언니가 빗겨주면서 머리숱이 많아 좋겠다 했던 다정함이 떠올라 나는 언니가 쓰던 빗을 가져가겠다고 하며 머리빗을 받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낡은 빗은 언니가 이사 가고 난 후 그리워질 때 한 번씩 꺼내봐야지 싶어 서랍 제일 위칸에 넣어 두었다. 이불을 펴고 누웠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아침밥상에도 양파볶음을 올렸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반찬이 될 것 같았고 명옥 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반찬이 될 것 같았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내게 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명옥 언니를 떠올리고 싶었다. 등교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여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언니가 수첩 한 권을 들고 서있었다.
"욱아, 언니가 오늘은 시골집에 갔다 오면 내일 바로 이사하고 니 볼 세도 없을 것 같아가. 자, 이거."
"수첩 아이가 언니야?"
"니, 고등학교 가서도 계속 공부 잘 하그래이. 언니 맨치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니 맨치로 학교가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야 안되나. 그래가 서로 어울리 살아야 된다. 니, 너무 쪼그라들어 있지 말고 어깨 피라. 느그 아부지 무섭게 그캐도 고마 잊어뿌라. 그거 담아두고 살면 니 속병 난데이. 그라고 속에 담아두지 말고 여게 다 써라. 여 수첩에 다 쓰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알겠제?"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 양말도 한 짝만 신은 채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언니는 다시 말했다.
"욱아, 니도 처음에는 양파가 맵다고만 생각했다 아이가 그자? 근데 볶아 보이 달제? 원래 양파는 달아, 달데이. 사람들이 말이다.... 잘 모린다. 너무 급하게 보고 생각해뿐다 아이가. 잠깐 보고 한번 봐서는 잘 모린다. 욱아, 니 너무 자책하지 말그래이. 니 잘하고 있데이. 나중에 꼭 열심히 해가 대학 가그래이. 언니가 멀리서 응원할게. 늦겠다. 어여 학교 가라."
"언니야......"
학교를 가면서도 머릿속에 언니의 말이 계속해서 자동재생이 되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교실문을 열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말이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진짜? 내가?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머릿속이 온통 현재와 미래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연습장을 꺼내 떠오르는 대로 습작을 했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니 명옥 언니의 방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살짝 열어보았다. 보자기에 짐들이 묶여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아, 언니가 정말 떠나는구나 싶었다. 어제의 허전함이 다시 밀려왔다.
언니의 방이 비워졌다. 저녁밥상을 물리며 아버지가 비어있는 옆방으로 가라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방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연탄을 갈기 위해 동생들이 깰까 봐, 할머니와 아버지가 뒤척이실까 봐 조심조심 일어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좋았다. 이젠 '별이 빛나는 밤'에도 편하게 들을 수 있겠지 그리고 학교 가서 친구들과 선곡되어 나왔던 노래도 서로 알려주고 부를 수 있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밤 갑자기 처음으로 생긴 내 방에 누워 수첩을 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를 들으며 명옥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도 이 프로그램을 들을까?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내기 위해 언니와의 짧은 만남을 한 장의 엽서에 꾹꾹 눌러 담아 써 내려갔다. 라디오 디제이에게 읽혀 전국으로 퍼졌던 명옥 언니와 나,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 마음 한자리에 언니가 있을 거라서 괜찮았다. 내 마음은 늘 빈방이었는데 그 한쪽을 채워준 언니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언니로 인해 내 마음이 채워져 또 한 뼘 자라고 있음이 고마웠다. 내게 양파는 여전히 맵다. 매운 만큼 달기도 했다. 열다섯의 매운 시절이 곧 지나가겠지 하는 이 밤에도 나는 여전히 쓸쓸하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