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 문제로 몇 주 동안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부모님들이 차례대로 학교를 방문해 담임을 만나상담을 하고 돌아가는 일정이 이어지는 날들이었고 엄마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던 나는 계속 망설임으로 불안에 갇혀 있었다. 저녁상을 다 정리한 후 셋방살이하는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동네 골목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였다.
"어이~ 니 어데 가노? 웬일로 저녁에 집 밖을 다 나왔지?"
"아, 또, 왜!!!!!"
"니 잘 만났다. 내일 줄라 캤는데 이거 좀 전해도!"
"됐거든! 내가 니 심부름꾼이가? 니가 직접 주면 되잖아! 카고 고백할라카면 똑바로 해라! 직진 모리나?"
"아따, 가시나 오늘 억수로 삐딱하네, 알겠다 치아뿌라!"
같은 동네에 사는 여진에게 고백 한번 해보겠다고 계속 틈만 노리고 있는 정우를 만났다. 어차피 아침 등굣길에 마주칠 텐데 그놈의 고백쪽지는 항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건지 나만 보면 자꾸 전해 달라는 거였다. 참으로 성가신 녀석이었다. 난 지금 나름의 생사고비 같은 일에 목이 턱턱 막히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녀석은 실실 웃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더 짜증을 부추겼다. 동네에서 꽤 오래 살았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는 국민학교 때부터 골목 친구들이다.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이다 보니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드나들어서 어떨 땐 그냥 가까운 친척 같기도 했다. 중학교 배정에서는 여중과 남중으로 흩어졌지만 학원은 같은 곳이어서 방과 후엔 다시 모여 다니는 듯했다. 유일하게 나만 다니지 않았던 학원,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욱이 오나? 오늘도 욕봤데이~"
"예, 다녀왔습니다. 우리 할매, 낮에 한번 나오셨던가예?"
"오야, 점심 묵꼬 나오시가 동네 할매들캉 같이 있다가 아까전에 드가셨데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던 진로 슈퍼 아주머니 덕에 우리 동네는 늘 따뜻하고 안전했다. 그런 정겨운 동네를 터벅터벅 걷기만 하는 것 자체가 아쉬웠지만 내 심정이 복잡하고 불안했던지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걷고만 있었구나 싶었다. 다시 슈퍼 근처로 돌아온 것을 느끼고서야 아차 싶어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뭔가 좀 후련해지는 듯했지만 그 반대로 엄마는 내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것 같아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엄마는 늘 자신 없어했다. 학력도 짧고 말주변도 없고 시골에서 농사짓다 보니 새까맣게 그을리고 쭈글 해진 피부와 흙이 파고들어 잘 씻겨지지도 않는 두터워지고 갈라진 손으로 엄마는 늘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냥 엄마면 되는 건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며칠 후 엄마가 학교로 오셨다. 까만 비닐봉지에 박카스 한 박스를 담아 손으로 들지도 못하고 품에 안은채 교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 수줍음과 어색함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를 반기며 팔짱을 꼈다. 교무실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 깜깜해진 터널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어무이예, 야는 지금 인문계 가마 안됩니더! 동생이 몇 명 입니꺼? 작년에 한 명 더 태어나가 밑으로
다섯 명 아입니꺼! 안됩니더! 안돼예! 야는 첫째라가 돈 벌어야 될 거 아입니꺼, 예?"
"......"
"어무이예, 고마 실업계 보내이소. 지금 성적보다 쪼매 하향해가 가면은 거 가가 상위권 됩니더.
그라믄 금융권 취직 보장됩니데이, 그기 더 안낫겠십니꺼. 고마 그래 하이소~"
"...... 스..슨새임예....그래도 야가 대학이라도 갈라카마 인문계를 가야 안 되겠으예?"
"하이고, 어무이, 야가 뭔 대학을 가겠십니꺼? 카고 대학가마, 밑에 동생들은 우얄라꼬예?
돈 버는 기 최곱니더! 고마 맏이보고 희생하라 카이소."
"......"
그때였다. 수학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오셨고 옆반의 담임을 맡은지라 바로 옆자리에 앉으시며 나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전 선생, 욱이는 성적도 괘안은데 고마 인문계 보내지 그카노! 와자꾸 아~들을 실업계 보낼라카노!
동생 많으면 뭐, 하고 싶은 것도 모하고 대학도 몬가나?"
"이 선생은, 고마 빠지라. 지금 내 반 아 하고 상담하는데 와카노, 거 참......"
엄마는 계속 침묵하고 계셨다. 그 무겁고 두렵기까지 했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담임이 말했던 희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무엇인가 속에서 쿵하고 떨어지며 속이 덜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실업계 갈게요. 그렇게 원서 접수하께예. 대학 못가도 괜찮아요."
"그래, 니 생각 잘했데이. 느그 부모님 생각해봐라, 동생이 다섯 아이가, 대학이 왠말이고 야야......"
까만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박카스 한 박스를 담임의 책상 위에 올려주고 엄마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를 끝낸 후 내 손을 잡고 교무실을 나왔다. 아무 말 없이 교문까지 걸어갔고 중학교에 처음으로 오셨던 엄마는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은 채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낮게 건네고는 돌아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셨다.
"엄마, 조심히 잘 가래이~ 토요일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갈게요."
나는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와 교실로 들어갔다. 3층에 자리한 3학년 교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엄마의 뒷모습, 한쪽 어깨가 축 쳐진 채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마음속이 지금 어떨까, 얼마나 복잡하고 힘이 들까, 엄마, 엄마, 엄마...... 그 뒷모습이 슬프고 그늘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열다섯 살의 내 기억에 담길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도 생생하여 책상에 엎드려 울고 또 울었다.
"에헤이, 담임, 또 실업계 한 명 넣었네. 쌤은 자꾸 와카지? 욱이 이모 우짜노......"
"울지 마라, 이자뿌라, 욱아 고마 울어라, 괘안타 다 괘안아진다."
교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였다. 짝꿍이던 미정이 교실로 뛰어들어오며 나를 찾았다. 그리고 미정은 아무렇지 않게 내 등을 쓸어주었다. 눈물을 닦고 창문을 보니 엄마는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길 건너 시외버스터미널로 걸어가고 계시겠지 싶었다. 그리고 미정에게 나지막이 건넸다.
"바람이 불마 나뭇가지는 흔들리도 뿌리는 안 흔들리잖아. 내가 어데 가고 없어지는 거 아이잖아. 맞제?"
창문으로 보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 한그루, 미정이 전학오기 전부터도 늘 친구 같았던 나무를 바라보며 애써 감정을 누르고 말했다. 그래 나는 이 상황이 서글펐던 것이다. 서로 싱겁게 웃는 사이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작 종소리가 들렸다.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엄마의 뒷모습을 통해 느낀 슬픔의 여운은 밤이 깊어가도 사라질 기미가 없는 듯 끙끙 앓고 있던 사이, 옆방에 또 다른 세입자였던 명옥 언니가 공장일을 마치고 귀가했다. 늦은 시간까지 방에 불이 켜진 걸 보고 언니가 인기척을 해왔다. 그리고 오후에 간식으로 받았다던 크림빵을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며 한마디를 기어코 해주고 갔다.
"뭔지는 모리겠지만, 그거 뭐 다 지나가는 거다. 고마 자라."
"......"
그래 다 지나가는 일이 맞다. 지나가는 일인데 그냥 지나가지 말고 이왕 갈 거면 나를 좀 더 자라게 해 주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할 테니까 말이다.
나름대로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머리가 핑 돌아서 그대로 주저앉았을 만큼 매 시험마다 최선을 다했었다. 머리가 얼마나 나쁜 편인지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 수학 과목을 제외하고는 그냥 교과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하고 외우고 또 외웠다. 남들은 금방이면 외우고도 남을 것들, 공식만 알면 술술 풀어질 문제들, 바보 같았던 내게는 낯설고 두려울 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낮 뙤약볕에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을 엄마를, 하루 종일 앉았다 일어났다 구부렸다 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고 해야 하는 과수원과 밭일을 하던 엄마를, 그 엄마를 떠올리며 시험공부를 했었다. 그렇게 3년을 버텨가고 있었는데 오늘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실업계 고등학교 원서가 오버랩되면서 나는 새벽까지 잠들 수가 없었다. 명옥 언니 말처럼 다 지나가는 일이 분명 맞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다 지나간다는 그 여정의 길목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변수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무능하게 그저 버텨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또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낙심했다. 다 지나갈 테지, 앞으로의 시간은 또 어떤 일들로 채워질까?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열다섯도 이렇게 힘든데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