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놓여있는 꽃이불

by Yonuk

학교 교문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문구점엔 유덕화와 장국영이 늘 웃는 모습으로 펄럭이며 운치를 더한다. 책받침 속에 갇힌 멋있고 우아한 그들은 언제나 내 편 같기만 해서 좋다. 아무런 말을 털어놓고 내려놓아도 다 받아줄 것만 같았던 그들에게 넋을 잃고 있노라면 뜨거운 여름 햇살에 팔뚝이 발갛게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좋기만 하다.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학교 길 건너 시외버스터미널로 걸어가는 나를 발견한 친구들이 멀리서 손을 흔든다. 한동안 볼 수 없는 그녀들의 얼굴이 멀어져 가기도 전에 부리나케 매표소로 뛰어갔다. 시외버스에 앉아 오십 분 정도를 눈감고 있으면 도착하게 되는 곳,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방학 동안에는 꼼짝없이 붙들려 힘든 과수원 일을 해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터미널에서 마을로 가는 버스를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지루하다. 하루가 다 지나가는 것만 같은 시간, 서서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멍하니 대합실에 앉아 뻐꾸기시계 초침을 보고 있노라면 순식간에 그 대형 시계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괜히 더 멍해졌다. 기다림과 느림에 갇힌 읍내에서 또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마을회관 앞에 도착, 내일부터 방학이라는 말은 뱉어내지 못할 내 고단함이 시작됨을 알리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엄마, 어디 있어? 어디쯤 있어요?"


아무리 불러봐도 인기척이 없다. 이른 새벽 과수원은 고요하기만 하다. 바람 한 점 없는 곳, 과수원 뒷산에서 우는 이름 모를 새소리만 명랑하게 들린다. 엄마를 찾아가는 길에는 새벽이슬을 맞은 시원한 풀내음, 그 풀을 밟고 지나가는 내 발자국 소리, 새들 소리 그리고 머리에 이고 가는 아침밥이 든 바구니에서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뒤엉켜 춤을 춘다. 하는 수없이 다시 뒷산 쪽에 있는 디쁜디기 과수원으로 올라가니 엄마는 이미 복숭을 상자에 차곡차곡 넣는 작업을 하고 계셨다.


"욱이 왔나? 아이고 고생했데이. 막내는 자드나? 우예 놓고 왔노?"

"엄마, 얼른 밥 먼저 드세요. 막내는 자요."

"오야 그래."


아침밥을 드실 동안 난 옆에서 말없이 엄마가 하던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과수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른 새벽부터 오전 아홉 시 정도 사이가 된다. 그 이상 시간이 넘어가면 햇살이 뜨거워져 과수원 일이며 다른 밭일도 할 수 없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린 동생들 때문에라도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점심 먹거리 준비로 채소밭 오이와 가지 파 그리고 닭장 안에 달걀까지 챙기면 이제 집으로 가는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씻고 막내가 먹을 분유를 타며 동생들을 살핀다. 엄마는 우리 네 자매의 아침 겸 점심준비로 분주해지신다. 하루의 반나절이 이렇듯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열세 살의 나이에 이미 체득한 나는 내내 기다렸던 개인 시간을 위해 대청마루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름대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뒷마당 대나무 우거진 장독대로 빠져나갈 즈음엔 내 긴 호흡도 같이 딸려 나갈 수 있도록 입을 크게 벌려보곤 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떨구어 바느질에 집중해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빠른 속도를 내지 못했던 탓에 약간은 짜증 섞인 한숨이 났다. 그때를 틈탄 동생들은 어지럽게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시끌벅적함을 더해가고 방학숙제인 수놓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겠다는 걱정스러움이 속을 비집고 들어오니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졌다.


오후 다섯 시쯤이 되어 다시 밭으로 나갔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시간, 엄마와 나는 밭고랑에 무성히 자라난 잡초들을 정리하는 호미질도 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비닐이며 바구니들을 모아서 창고정리를 하기도 했다. 내일 출하작업을 위한 준비를 하며 공판장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 두었다. 하루가 지나가는 이 오후 시간이 제일 평안한 때였다. 저녁밥상 준비로 채소밭에 허리를 굽히고 이것저것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오일장이 들어서야 두부 한모가 들어가는 시골된장찌개는 장날은 아니지만 무와 파가 듬뿍 들어간 것만으로도 깊고 시원한 맛으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구수함을 더해주었다. 식사 후 저녁시간엔 동생들 숙제를 조금씩 도와주다 수놓기 숙제를 다시 이어갔다. 풀벌레 소리, 많은 별들 가운데 유난히 크고 반짝이는 별, 말린 쑥을 태운 연기가 온 마당을 휘감고 돌아 집안으로 들어오면 따갑게 한방 쏘고 가던 모기 소리도 잠잠해졌다. 열심히 수를 놓고 있는 틈에 삼일 연속으로 일하시고 하루를 쉬게 되는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피곤함과 짜증으로 덧입은 말투에 늘 과수원 일에 대한 지시만 하셨던 터라 숙제 검사를 받듯 긴장해야 하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는 여름밤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날엔 더 일찍 새벽잠에서 일어나야 했다. 고요한 새벽 시간마저도 긴장감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 왔다. 과수원에서 하는 일도 훨씬 강도가 세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아버지가 있는 과수원에서 나는 더 이상 열세 살 아이가 아니었고 또 어느 날에는 품앗이로 오시는 이웃마을 아주머니 같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꾸지람을 듣다 보면 온몸이 괴로워졌다. 한 번도 잘했다는 말을 들어볼 수 없었던 과수원에서의 일들은 하루 종일 큰 짐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얼마큼 시간이 지났을까?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대청마루에서 방학숙제를 하다 잠이 들었나 보다. 그 옆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꽃이불. 잠든 사이 아버지는 내 방학숙제를 도우셨던 것이다. 그 투박한 손으로 분홍빛 천에 꽃을 수놓아주셨다. 순간 나는 멍해졌다. 아버지의 모든 말투와 행동들이 꽃이불속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수놓기를 했다. 아버지는 오후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셨다. 집안은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꽃이불은 완성이 되었고 홑겹이었던 이불은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방학숙제 전시회에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여름이 지나고 늦가을이 되었을 때에 아버지는 그 홑이불을 겨울이불로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는 마당 한편에 앙고라토끼를 기르면서 그 털을 수출하는 일도 하셨는데 조금 남아 있던 앙고라 털을 창고에서 가져오시더니 앉은자리에서 이불을 펼쳐 따뜻한 꽃이불로 만드셨다. 꽃이불은 그렇게 우리 집에서 수년간 따뜻함을 더해 주었다. 나와 아버지의 첫 합동작품이자 여름과 겨울 사이만큼이나 거리가 있던 부녀 사이를 잠시나마 이어준 꽃이불.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침묵과 퉁명스러움, 짜증 섞인 말투 안에는 물에 잘 녹아지지 않는 기름과 같은 어떤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은 내게 잘 전달되진 않았지만 깊이 감추인 따뜻함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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